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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Dec 20. 2021

41. 나의 눈부신 친구(2)

은유

최근 독립 서점에서 <불면의 이유>라는 책을 샀다. 불면증을 겪고 있어서였다. 진짜로 불면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책 내용은 예상을 벗어났다. 소제목을 놓친 내 잘못이 컸다. 제목 앞에는 작게 '자아를 찾는'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다.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사적' 사람들에게 '비서사적'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철학서였기 때문이다.


친구 이야기로 시작하는 대신에 뜬끔없이 '서사적'이니 '비서사적'이니 하는 낯선 용어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엉뚱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책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 글은 친구에 관한 글이지만, 소제목 '은유'에 관한 설명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우선 변명을 하고자 한다. <불면의 이유>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설파해 왔던 '자아의 본질은 없다'는 명제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 즐거웠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사적'과 '비서사적'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서사적인 사람을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이 겪어온 경험들로 자신의 자아의 본질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이다. 또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는 프로이트파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비서사성을 믿는 저자는 이에 반대한다. 과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에게 자아의 본질이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서사적이지 못한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이 인정해야 하다는 말이다.


나는 <불면의 이유>의 저자인 갈렌 스트로슨의 말을 빌려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비서사적인 사람이다. 자아의 본질을 믿지 않으며, 자유의지도 믿지 못한다. 과거가 나의 현재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다만, 영향을 미쳤다면 그 경험이 나의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로서의 은유가 내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


여기부터 본론이다. 내게 있어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를 처음 사귄 순간을 기억한다. 2004년이었고, 초등학교 3학년 개학식 날이었다.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번호를 부여하기 위해 교실 뒤쪽에 키 순으로 서게 했다. 내 기억으로 나는 7번째였다. 바로 뒤에 있던 8번째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즐거웠고 크게 웃었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공감의 웃음이었다. 내 인생 첫 친구와 만난 순간은 주변이 환해지는 웃음으로 기억된다.


이 아이의 이름을 최윤정이라고 하겠다. 아마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일 것이다. 윤정이와 나는 첫 만남 이후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붙어다녔고, 수다를 떨었다. 우리 곁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참 신기할 정도로 그 어떤 대화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윤정이는 내가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강력한 은유를 형성해 줬다. 내게 있어 우정이란 해맑은 무엇이다. 따뜻한 또는 뜨거운 햇빛이 비추는 운동장 아래 킬킬거리며 웃는 아이들이다. 무슨 얘기를 해도 즐겁다. 나는 그 모습을 하나의 영혼을 나눠가진 두 개의 몸체로 상상한다. 나는 운명적 우정을 믿는다. 처음 보는 순간 나와 맞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나는 우정에 있어 순진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은유의 힘은 강하다. 나는 은유에 힘입어 우정은 운명처럼 나타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은유에서 나오는 믿음의 힘 역시 강하다. 빛나는 우정은 이전에 갈라진 하나의 영혼이 서로를 찾는 자석과 비슷하다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라는 은유에 힘입어 나는 첫 우정을 맛본 후 누군가와 구태여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윤정이는 내게 우정의 시작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첫 우정에서 '우정의 끝'에 관한 강렬한 은유도 얻었다. 


윤정이와는 1년만에 다른 반이 되면서 잠시 멀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우리는 다시 함께 하게 됐다. 그런데 사건이 있었다. 영어 수업 도중에 윤정이와 몸싸움을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수업이 재미없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윤정이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나는 아프기도 하고 갑작스럽기도 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윤정이는 내가 기지개를 켜면서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뒤통수가 얼얼했다. 열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윤정이를 세게 때렸다. 윤정이는 다시 나를 때렸고, 나도 맞받아쳤다. 그렇게 주먹과 발을 2-3번 주고받다고 선생님이 중재를 나서서야 우리의 격투는 끝났다. 우리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크게 싸웠고, 이후 서먹한 관계가 됐다.


다행히도(?) 나는 3주만에 전학을 가게 됐다. 윤정이와 싸워서 가게 된 것은 아니었고, 원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다. 윤정이는 내가 전학가기 전날에 먼저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전학 가는 날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마 선물도 줬던 것 같다. 나는 윤정이의 사과를 받아줬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고 난 뒤였다. 윤정이가 남겨준 강렬한 우정에 관한 은유는 내가 윤정이와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물론 윤정이는 내게 우정의 마지막에 관한 은유도 남겨준 '눈부신 친구' 중 하나다.


은유는 현실이 된다. 은유가 강력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전학을 간 뒤 나는 윤정이를 뛰어넘는 '눈부신 친구'를 만난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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