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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May 10. 2023

신종교

상담을 받은 건에 대하여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자>라는 책을 좋아한다. 기독교에 내포된 낙관주의를 볼테르 특유의 냉소주의로 풀어낸 소설이다. 낙관주의자의 논리는 고난 앞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낙관주의는 인생의 고난과 불행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해석한다. 이런 식의 회로를 끊임없이 돌릴 수 있다면 비관주의는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비관주의자로서 낙관주의를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이 24살이었다.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고난이 닥치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했다.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법을 찾았다. 그게 올바른 삶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취준 2년차, 길을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책했다. 그 무엇도 내 불행의 원인이 아니라면 내가 끌어안은 불행은 내 탓임이 분명했다.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무엇을 봐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바라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지인의 어머니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증 우울증 환자였는데, 천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루종일 누워있으니 눈에 천장만 보였다. 내 세상의 전부였다.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던 걸까?


나는 꽤 운이 좋아 체계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정신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첫 3개월 동안은 심리상담을 의심했고 정신과 치료는 여전히 믿지 못한다. 그러나 상담의 도움을 받은 것은 같다고 말해야겠다. 일주일에 한번 작은방에 상담사와 마주 앉았다. 그주에 있었던 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내 마음을 괴롭혔던 일로 눈물과 함께 이야기를 마쳤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낙관도 비관도 아닌 객관을 배웠다. 상담사는 내가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왔다. 내가 원하던 바였다. 그리고 분명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올바른 삶의 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취준 5년차였고, 내 인생은 객관적으로 별로였다.


나는 무교지만, 상담사는 나의 새로운 종교였다. 나는 고통을 말했고, 상담사는 들어줬다. 영원히 실패한 상태로 머물까봐 무섭다고 했고, 상담사는 상황이 바뀔 거라고 했다. 나는 기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했고, 상담사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 상담은 객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낙관화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는 내가 낙관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게 안심이 됐다. 내 나이 29살, 낙관주의를 더이상 웃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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