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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Sep 06. 2023

시대정신

후라이의 꿈

대학원의 한 교수는 저널리스트라면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형적인 강남 좌파로, 세상의 모든 수혜로 세례받은 사람이었다. 사람 자체는 빛이 났지만, 신은 공정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가 말하는 시대정신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교수의 말에 마법 같은 힘은 없었지만, 창작자는 시대정신을 읽긴 해야 한다. 시대정신이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이 역사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023년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바로, '탈이념'이다. 기자들은 시대정신을 읽는 법을 몸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민첩하다. 몇 년 전부터 MZ세대를 특징지으려던 노력들이 그 증거다. 그들은 현상을 붙잡으려 했다. MZ는 개인적이다, 공동체 정신이 없다, 아무튼 이렇다 저렇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MZ세대를 특징 짓는 라벨은 이름 빼곤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념의 세대가 이념을 벗어난 세대를 감각할 수 있을리 없다.


시대정신의 발원지는 모호하다. 개개인의 정신 상태가 시대정신을 낳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시대정신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처럼 시대정신이 어떻게 흘러나왔는지 짚는 것은 답 없는 논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대정신이 발생하는 지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시대정신은 예술>철학>사회과학 순으로 흘러내려 간다. 따라서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 저널리즘이 MZ를 포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탈이념이 오래된 물결이라는 증거다.


'탈이념'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 선두 주자 한명으로 밀란 쿤데라가 꼽힌다.


1984년 발표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주인공은 이념 전쟁에 살아남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공산주의 사회인 체코에서 자유주의자로 낙인 찍혀 본업인 의사에서 밀려나 청소부로써의 삶을 보낸다. 놀라운 점은 주인공이 전혀 절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사회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한다. 가장 사적인 순간인, 섹스에서만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바람둥이로 모든 여자와 관계를 갖는다. 그 안에는 사랑도, 어떤 의미도 없다. 다만 감각만이 존재한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시대정신은 하나다. '탈권위주의'


근현대 역사에서 이념은 곧 권위였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권력 체제는 '반공산주의'를 중심으로 했다. 공산주의의 그림자라도 표방한다면 권력의 세계에서는 철저히 배제 당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이 권력 체제에 대응하는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이뤄졌다. 권위주의가 배제되기 시작했고, 지금의 교권 붕괴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은 중심에 향해 있었다. 반공산주의 또는 민주주의라는 이념 또는 권위에 부응하려는 사람들이 주위를 감쌌다. 그런데 1990년 X세대부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정치에 전혀 관심 읍써요."


이때부터 사람들은 권위에 탈권위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에게 권위를 향한 불복종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권위를 땅바닥에 집어 던지는 것으로 모자라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삶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소소한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근 SNL 코리아에서 MZ세대에 X세대를 대응시키는 일은 그런 점에서 통찰력 있다. MZ세대는 X세대의 탈권위주의가 강화된 시대정신을 대표한다.


지난달 21일 발매된 AKMU(악뮤)의 '후라이의 꿈'은 MZ세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꿈, 이상, 즉 우리가 권위를 부여하던 것들을 모두 거부한다. 1995년 발매된 패닉의 '달팽이'는 먼 훗날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 즉 목표와 꿈의 세계에 영원이라는 권위를 부여한다. 2007년 발매된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모든 사람이 무시해도 자신의 꿈을 지킨 개인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그에 대해 후라이는 말한다.


"저 거위는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말하고, 달팽이는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말하니까, 나도 꿈을 찾으라고? 아니, 강요하지마. 난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거야. 너의 꿈, 세상의 꿈에 나는 전혀 관심 없어."


그러니까 거위와 달팽이의 말이 이 시대 후라이들에게 통할리가 없는데, 하물며 반공소년은 후라이들에게 시대정신을 내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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