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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May 26. 2024

시작

지하로부터 수기

2020년 6월 처음으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였다.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머릿속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써내려갔다. 하루에도 글을 2~3개씩 썼다.


2021년 10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원인은 오랜 취준 기간으로 인한 극복되지 않는 좌절 상태로 요약된다.


그즈음부터 심리 상담을 받았다. 처음으로 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 경험을 했다. 6개월 동안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대학원 교수가 응급 학생으로 연결시켜주면서 도와주겠다고 했고, 그 조건 중 하나가 심리 상담이어서 그냥 갔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쯤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항상 그랬듯이 상담에서도 우등생이었다. 머릿속 생각을 솔직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라고 선생님을 말씀하셨다. 나는 솔직히 물었다.


"심리 상담이 도대체 저한테 어떤 도움이 되는 거죠?"

"머릿속의 생각들을 말하잖아요."

"이미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실체가 되어 나에게 내리 꽂혔고 관념은 현실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실체가 된 짐을 털어낸 듯 개운했고, 그 다음에는 실체에 엊어 맞은 것을 아파하며 고통스럽게 끙끙댔다. 여기서 드는 의문. 이것들을 겪으면 나는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나는 이후 3년 가까이 괜찮아졌다가 다시 안 괜찮아지는 상태를 반복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며 상담을 마쳤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심리 상담을 받으며 정신과 진료도 함께 받고 있었는데 의사는 내 우울증 에피소드가 길어지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니까 우울증 발병은 일명 '삽화'로 불리며, 우울증은 찾아왔다 사라진다. 그런데 3년도 전에 찾아온 내 우울증은 나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루틴을 찾는 것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하며 취준 상태를 빨리 끝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서류를 넣은 결과 들어간 자리가 방송국 리서처였다. 그게 지난해 2월이었다.


나는 여전히 우울증 환자였고, 나아가 공황을 겪게 됐다. 길을 가다가 심장이 너무 뛰어 숨을 쉴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고 나는 급히 근처 화장실 칸에 들어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했다. 깊이 들이 마쉬고, 깊이 내쉬고. 그렇게 5번 혹은 10번. 상담 선생님에게 배운 대처법이었다.


때때로 회사에 있을 때 눈물이 나왔다. 그때의 심정을 말하자면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하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신께 빌었다. 제발 제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존재하신다면.


그러다 책에서 한 문구를 발견했다. 


'산다는 데는 그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은 고통받는 자아를 실어나르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마음이 존재한다면 내 위가 꿈틀대는 그 어디쯤일 것이다. 나는 공황이 왔을 때 언제나 그 부위가 묵직해지면서 소용돌이 치는 감각을 느꼈다. 그런데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마음을 누르던 체증이 내려갔다. 그때 이후로 내 삶의 목표는 단 하나가 됐다. 존재 그 자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불행을 느끼는 일도, 그래서 행복을 쫓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존재한 이후로 불행과 행복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행복은 존재를 전제로 한다. 삶이 너무나 버거워서 존재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는 이 말을 떠올리자. 존재하기 때문에 버거운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버거움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란 말인가.


우울증은 조금 나아지는 듯 싶다가 다시 나를 짓누르길 반복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다니기 시작한 정신과 의사는 어느날 내게 물었다. 


"원하는 곳에 취업하면 우울증이 나을 것 같나요?"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닌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은 나도 모르던 나를 깨닫게 한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내가 괜찮아지지 않으면 나는 어떤 조건의 상태로 존재하든 괜찮아질 수 없다.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까 지속가능한 삶을 나에게 마련해줘야 한다.


이후 취업을 했고, 괜찮지 않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안심한 세월을 보냈다. 그게 한 8개월 정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는 그제.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죽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 생각이 너무나 지독하고 지리멸렬해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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