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영화리뷰
엽문이라는 무술가가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 쿵후 스타 이소룡 때문에 처음 알았다.
이소룡이 직접 만든 무술인 절권도의 근간이 되는 영춘권을 엽문에게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소룡이 엽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윌리엄 청 덕분이다.
윌리엄 청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춘권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원래 영춘권은 지극히 폐쇄적인 무술이다.
영춘권의 본류는 창시자의 적통을 이어받은 직계가족 등 소수에게만 전수돼 왔다.
그 외 사람에게 가르치는 영춘권은 일부를 빼거나 변형시킨 수련용으로, 지금 여러 국가에 퍼져있는 영춘권의 상당 부분이 바로 '진화순 방식의 영춘권'으로 통하는 변형판이라고 한다.
엽위신 감독의 영화 '엽문'에서 주인공 엽문이 일반인들에게 무술 전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부자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영춘권의 폐쇄적 전통 때문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청은 변형된 진화순식 영춘권이 아닌 정통 영춘권을 전수받은 인물이다.
이소룡은 윌리엄 청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윌리엄 청은 이소룡의 부탁을 받았으나 영춘권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거꾸로 윌리엄 청은 이소룡이 또래 아이들을 모아 '호랑이파'라는 싸움 패거리를 만들어 길거리 싸움을 벌이는 것에 대해 얼굴이 잘 알려진 아역배우 출신이니 처신을 잘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도 이소룡은 길거리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소룡은 호랑이파 패거리를 이끌고 패싸움을 벌였으나 크게 패해 두들겨 맞은 뒤 윌리엄 청을 다시 찾아갔다.
윌리엄 청은 결국 끈질긴 이소룡의 부탁에 못 이겨 당시 홍콩 요식업 노조사무실에서 무술을 가르치던 엽문에게 데려갔다.
엽문도 당시 13세였던 이소룡을 본 첫 느낌이 윌리엄 청과 같았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어서 호감이 갔고 무술을 하면 잘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장 엽문은 그 자리에서 이소룡을 제자로 받아들여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운동 신경이 남다른 데다가 워낙 열심히 훈련을 한 탓에 다른 제자들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엽문의 제자들은 그런 이소룡을 시기했다.
엽문은 제자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소룡을 아껴 계속 영춘권을 가르쳤다.
급기야 제자들은 모두들 도장을 그만두겠다며 반발했다.
보다 못한 이소룡이 먼저 엽문의 도장을 그만뒀다.
그러나 이소룡은 영춘권 수련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엽문 대신 그의 도장에 있던 사범 황순량과 영춘권 수련을 계속했다.
또 중요한 이수는 주말마다 윌리엄 청을 만나 갈고닦았다.
이소룡이 영춘권에 매료된 것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소룡은 길거리 싸움에 활용하려고 영춘권을 배웠으나 엽문의 영향으로 무술 철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본명이 엽계문인 엽문은 양찬이 정통 영춘권을 전수한 그의 큰아들 양벽에게 영춘권을 배웠다.
1893년 중국 광둥의 불산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엽문은 왜소하고 허약한 체질을 보완하려고 7세 때부터 무술을 수련했다.
처음 영춘권을 배운 것은 진화순을 통해서였다.
그러던 중 진화순이 죽고 그의 대사제였던 오중소에게 3년간 더 영춘권을 익혔다.
이후 홍콩으로 유학을 간 엽문은 그곳에서 영춘권을 이용해 길거리 싸움을 벌였다.
엽문이 길거리 싸움꾼이었던 이소룡을 아낀 것은 과거 자신과 비슷한 면을 봤기 때문이다.
우연히 엽문이 싸우는 것을 보게 된 양벽은 대결을 신청해 그를 때려눕혔다.
이후 양벽은 영춘권을 배우게 된 과정을 듣고 엽문에게 정통 영춘권을 전수했다.
엽문은 다시 불산으로 돌아왔으나 사부였던 오중소와 영춘권에 대한 의견이 갈리면서 마찰을 빚자 진화순 방식에 대한 영춘권에 대해 일체 침묵한 채 혼자서 수련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그는 일본군에게 집을 빼앗기고 막노동과 광산에서 일하는 등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국공 내전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엽문은 불산에서 국민당의 경찰 노릇을 했다.
하지만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엽문도 1949년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옮겼다.
엽문은 홍콩에서 생계를 위해 중국인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1972년 79세 나이로 사망한 엽문은 일대종사(一代宗師)로 꼽혔다.
일대종사는 한 시대의 최고로 뛰어난 스승이라는 뜻으로, 한 시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무술인을 의미한다.
엽위신 감독이 만든 '엽문'(葉問, 2008년)은 일대기를 모두 다른 영화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불산을 점령한 일본군과 엽문이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불산을 점령한 일본군 장군이 유난히 무술을 좋아해 중국 무술가들과 일본군의 대결을 자주 시켰는데, 여기에 엽문이 상대로 지목돼 승부를 겨룬다.
물론 실화에 기초하기는 했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윤색된 부분들도 있다.
주인공인 엽문은 홍콩의 무술배우 견자단이 맡았다.
그는 영춘권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나 이번 연기를 위해 목인장 사용법 등 영춘권을 배웠다.
영화 자문을 해준 엽문의 아들 엽준은 견자단의 영춘권 실력이 오래 영춘권을 연마한 사범 같다고 칭찬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영춘권 실력은 뛰어나다.
압권은 일본 도장에서 10명의 일본 무술 유단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전까지 가볍게 보여주던 영춘권과 달리 이 장면에서는 상대의 관절을 꺾고 부러뜨리며 잔혹할 정도로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이 일화는 훗날 이소룡의 '정무문'에 영감을 줬다.
견자단 못지않게 악역을 연기한 이케우치 히로유키나 중국 무술가를 연기한 번소황, 석행우, 엽문의 부인 역을 맡은 슝다이린 등 다른 배우들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촬영은 무술의 동작에 집중해 때로는 정속 촬영으로 빠른 스피드를 살렸고, 때로는 슬로 모션으로 동작의 절묘함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중일전쟁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회갈색의 모노톤 색감으로 잘 살렸다.
비록 엽문이 어떻게 살았는지 일대기를 모두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의 뛰어난 무술 실력과 훌륭한 인품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소리가 예술이다.
바람을 가르는 주먹질과 발길질 소리, 묵직하고 우렁차게 울리는 타격음을 확실하게 재현해 무술영화의 박력을 잘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