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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찾는남자 Jul 31. 2015

킬리만자로, 하늘길을 가다 #1

땅의 길을 가다보니 어느새 하늘의 길을 만났다.


내가 다녀온 곳은 하늘길이 있는 곳,

아프리카의 영혼이라 불리는 킬리만자로이다.



Prologue_하늘을 열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내가 본 것을 기록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셔터가 여닫는 순간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가 찍은 사진들은 내가 살아오고 걸어왔던 길의 흔적들이다.


간혹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기사를 발로 썼다.’ 혹은 ‘사진을 발로 찍었다.’등의 댓글들이 달린다. 사람들은 이 표현을 비꼼의 어조로 사용하지만, 나는 ‘발로’ 무엇을 한다는 표현에 동의하며 수없이 감탄한다. 사실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 정말로 맞다. 

‘발을 통해’ 정확히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는가? 일단 그 곳에 가야, 다음에 그 장소를 어떤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과 사진은 내 발의 흔적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부심과 얼이 담긴 곳이기도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유일의 만년설이기에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사진집을 통해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킬리만자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하며 아름다운 킬리만자로에 당신을 초대한다.


킬리만자로를 향해 떠나다

호주 맬버른 국제공항에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까지 저가항공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약 56시간 동안 이동했다.

어릴 적 TV에서만 보던 미지의 땅 아프리카, 무더운 그 곳에 만년설로 뒤덮인 산이 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여행을 준비하며 사람들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킬리만자로라고 대답했었다.


꼭 한번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곳, 킬리만자로.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그곳을 다녀온 시간들이 꿈같이 여겨진다.  5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사진을 통해 내 기억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킬리만자로 커피(Kilimanjaro Coffee)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레살렘에서 약 600km 떨어진 교역의 중심지 모시 (Moshi)지역. 적도 인근 남위 3°에 위치 하고 있다.

모시의 커피숍, 지역 주민들이 이곳에 와서 커피를 마시지는 않는다. 이 곳의 주 고객은 2,3층에 있는 호텔에 투숙하는 관광객이다.

모시 (Moshi)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킬리만자로 커피의 산지다. 킬리만자로 커피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물과 고산지 특유의 시원한 기온 때문이다. 


하지만 킬리만자로 트래킹을 위해 마랑구 게이트로 다가가는 동안, 대부분의 땅은 매우 황폐해보였다. 이 지역은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과 이상 고온 현상, 해충까지 급증하면서 커피 농사가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커피 농사를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인근 도시로 떠나는 주민들이 많다. 어떤 마을의 절반은 이미 빈집이 되었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는 불타는 태양의 땅이다. 적도가 지나가기 때문에 무더운 것이 당연하다. 이런 아프리카에 아주 특별한 산이 하나있다. 아프리카 유일의 만년설, 아프리카의 지붕, 아프리카의 영혼 이라 불리는 킬리만자로가 바로 그것이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인 우후루 피크(Uhuru Peak)는 해발 5,895m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휴화산으로는 세계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등정하기에 좋은 시기는 12월~3월, 6월~8월이다.



미지(未知)의 산 킬리만자로


과거 아프리카의 주민들은 ‘함부로 킬리만자로에 오르면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킬리만자로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이 가까이 하지 못하는 신성한 산으로 남아있었다.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킬리만자로 기슭에 사는 차가(Chagga)족들은 킬리만자로를 ‘산’이란 뜻의 ‘Kilema’와 오르기 어렵다는 의미인 ‘Kyaro’를 합쳐 ‘킬레마캬로’라 불러왔다. 이를 19세기 들어 독일 사람들이 ‘킬리만샤로(Kilimanshro)’로 불렀는데, 이후 아랍어와 스와힐리(Swhili)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이름인 킬리만자로(KIlimanjaro)로 불렀다고 한다.


한편 킬리만자로란 이름을 스와힐리어 Kilma와 Njaro의 합성어로 보기도 한다. Kilima는 스와힐리어로 ‘산’, Njaro는 마사이어로 ‘물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즉, 이 지역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물을 공급해 주는 산이란 뜻이다. 마사이는 킬리만자로를 ‘흰 산’으로 불렀는데, 킬리만자로를 등반했던 헤밍웨이도 이 산을 “온 세상만큼 넓고 높으며 위대하고, 태양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흰 산”이라며 감탄하였다.



3 degrees south latitude


서양인이 킬리만자로를 처음 발견한 것은 1848년 독일 선교사 요하네스 레브만(Johannes Rebmann)과 존 루드비히 크라프(Johann Ludwig Krapf)에 의해서다. 하지만 남위 3°의 적도지방에 만년설에 덮인 산이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기록상 최초로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오른 것은 1889년 10월 5일, 독일 지리학자 한스 메이어(Hans Meyer)와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Ludwig Purtscheller) 그리고 지역 가이드 요나스 로와(Jonas Louwa)로 알려져 있다.


1889년 당시에는 산 정상을 어떤 독일 황제의 이름으로 불렀었지만, 1961년 탄자니아가 독립을 쟁취한 후부터는 ‘자유’를 뜻하는 스와힐리어 ‘우후르(Uhuru)’로 부르게 된다. 제 2봉우리인 마웬지(Mawenzi) 는 1912년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츠 클루테가 처음으로 올랐다.


등정하기에 좋은 시기는 12월~3월, 6월~8월이다. 우기엔 거의 사람들이 없고 건기인 1~2월과 6~8월 사이에는 하루에 수백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산을 오른다. 공원 관리소 기록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외국인은 1년에 약 2 만6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킬리만자로는 대부분 현무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주봉 우리인 키보(5,895m)를 비롯하여, 마웬지(5,149m)·시라 (3,778m)의 3개의 성층/원추형 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키보 화산의 정상 분화구는 직경 1.9km에 달하는 칼데라를 이루고 있으며, 칼데라 중심부에는 유황을 함유한 화산재로 덮인 작은 분화구가 자리 잡고 있다.



멀리 거의 사라져가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보인다.

예부터 탄자니아에는 킬리만자로의 눈이 모두 녹아내리면 화산이 폭발해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예언들이 전해지고 있다.


과거에 강수량이 많았던 시절에는 물이 많이 흡수해서 빨리 자라기로 유명한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에서 들여와서 대대적으로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이어지는 기근으로 인해 도리어 유칼립투스 나무를 다시 베어내고 있다.



(이 글은 2009년 12월 21일부터 약 90일간 호주,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을 이동했던 세계 일주 여행 중 킬리만자로에서의 이야기만을 담아낸 것으로 계속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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