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표류기 22.1.25
‘바람’이란 영화가 있다. 90년대 말 경남의 한 상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폭력 학원물이지만 그 시절 경남지역 고등학교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다.(추천하는 영화다.) 회사를 한 1년 정도 다녔을 때 이 영화가 개봉했고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 사투리가 나랑 똑같다는 말에 사투리를 쓰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착각에 빠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가깝게 된 지인이 나에게 사투리를 고치라고 했다. “사투리가 병이가? 고치게.” 이게 내 대답이었다.
상대방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부산 출신 선배를 만났는데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된다고 하셨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사투리에 아집이 있구나.
꽤 오랜 기간을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내 입에서 나온 억양과 사투리에 주목받으며 그걸 즐겼구나. 사투리를 고치는 행위는 나를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더 드러내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산사람이라는 딱지가 도드라지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나를 무성의하게 드러낸 접근법이었다. 롯데를 좋아한다든가 여행 가서 부산에 갈 곳을 추천한다든가(딱히 잘 아는 곳도 없으면서) 하는 행동은 고민 없이 나를 희화화시킨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방법은 사투리가 아닌 심도 있는 말과 글이었으면 좋겠다. 같은 평행선에서 어떤 선입견을 주지 않은 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사투리와 고향 이야기에 초월하자는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