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표류기 22.2.6
비염이 심해져 목소리도 달라지고 숨을 쉴 때마다 묵직한 콧물이 느껴져 불편하다. 부탁받은 그림이 많아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서 버텼다. 양평 화타(내가 붙인 애칭) 선생님이 지어준 약은 나를 몽롱하게 만들어 견디기 더 힘들었다.
주말인데 그림만 그려야 하는 아빠 때문에 집에만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오후에 잠깐 블록놀이방에 다녀왔다.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이 많아 서진이 서현이 둘 모두 2시간은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다녀와서 2시간 정도 같이 놀아주고 재웠다. 미안함이 좀 가셨다. 티비에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스 스케이팅 남녀 혼성 계주를 중계했다. 한국은 넘어져 예선 탈락했다.
이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그리는 이유는 돈이다. 가족을 좀 더 나은 환경에 살게 하기 위해 나는 돈이 필요하다. 소원하던 내 집 마련은 좀 더 멀어졌지만 1년 뒤 이사를 해야 하니 좀 더 부지런히 모아둬야 한다. 그때가 오면 단돈 만원도 아쉽다.
장사를 하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었다. 장사가 너무 잘되는데 인테리어 비가 좀 모자란데 100만 원만 빌려달라고. 빌려줄 돈이 없어 거절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100만 원이 필요해 까마득한 후배에게 전화한 선배의 마음이랑 100만 원 여윳돈이 없어 빌려주지 못한 나의 마음이 답답했다.
돈이 필요해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는데 불편한 몸을 이끄고 오래 버티려니 머리가 휘청거린다. 펜을 붙자고 씨름하다 저녁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땅도 돌고 나도 돌고 힘겹게 하루를 그리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