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쯤은 나에게도 남부럽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꿈을 꿔본다.
누군가는 이를 행운이라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복이라 부르기도 하겠지만
나의 노력 이상으로 주어지는 무언가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한 번쯤은 꿈같은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나에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내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의 명예와 지위를 누리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건강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복이 나에게 한 번쯤은 찾아오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는 것 또한 우리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자신의 인생을 두고 조상들이 받은 복의 합보다 큰 복을 받았다 고백하는 이가 있다.
야곱은 눈을 감기 전 아들 요셉에게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복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았다 고백을 남기고 삶을 마친다.
(창세기 49: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자신의 삶을 두고 조상 중 가장 큰 복을 누렸다
고백하고 눈을 감는 이가 있다.
그의 삶은 얼마나 큰 복을 받았길래 스스로를 민족의 아버지라 칭함 받은 아브라함의 복보다
큰 복을 받은 자라 고백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인생을 되짚어가 보면 그리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복 받았다 고백하기에는 너무나도 외롭고 거친 삶을 견뎌왔다.
형이 자신을 죽일 까 두려워 도망치는 삶을 살아야 했으며,
외삼촌에게 속아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일꾼으로 일하기도 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다 머문 곳에서 딸이 다른 이들에게 성폭행당하기도 했으며,
그의 노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긴 세월 슬픔에 잠겨 살기도 했다.
그의 삶 어디에도 내가 꿈꾸는 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삶은 그저 험악한 세월이었으며, 고난의 흔적이었다.
그의 인생 어디에도 복 받은 자라 고백할 만큼 평탄한 길을 걷지도,
위대한 성취를 이루지도, 많은 재물을 모으지도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았다 표현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도 애굽의 왕 바로가 나이를 묻는 질문에 나그넷길이 130년이며,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고백한다.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스스로를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고백하는 이 가 어떻게 눈을 감는 순간
자신의 인생을 조상 중에 가장 복 받은 자였다 총평할 수 있었을까?
그는 복을 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복이라면 쟁취해서라도 받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중에서부터 형의 발목을 잡아 먼저 태어나 장자의 복을 받으려 했으며,
결국에는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도 했다.
또한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며 날을 새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복을 갈구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 그 이상을 을 다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복을 갈구했던 그에게 주어진 삶의 결과는
늘 두려움에 떠는 도망자의 삶이었고, 거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복의 시간이라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머물 곳 없는 나그네의 삶이었기에 매일을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며,
그는 세상의 두려움이 늘 엄습했기에 하나님께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갈망할 수밖에 없었던 험악한 삶을 그는 조상 그 누구보다 복된 삶이었다 고백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복이라 정의할 것인가?
그 복은 나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
내 삶의 마지막 난 무엇을 통해 복된 삶이었다 고백할 것인가
우리는 야곱의 인생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첫 번째, 우리는 무엇을 복(福)이라 정의할 것인가.
내가 갈망하는 무엇인가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 복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하루가 복된 삶인것인지
두 번째, 야곱의 인생을 복 받은 삶이라 정의한다면 그는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야곱은 험악한 인생으로 대가를 치르긴 했으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일까
로마서 9장에서 야곱은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선과 악을 행하지 아니 한때에
야곱을 사랑하사 태중에서부터 복 받은 자로 지명된 것이다.
복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야곱의 인생과 그 대가로 치러야 했던
험악한 인생이 허탈할 만큼 그는 이미 태중에서부터 복을 받기로 지명된 자였던 것이다.
복은 우리의 어떠한 행위의 대가가 아닌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무엇이 복(福)인가, 복을 나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복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언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일까
오늘도 쉽지 않은 삶의 도전 앞에 외롭게 서있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