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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Jul 31. 2022

예전의 컷으로 돌아가지 않아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그렇지만 시간이 멈추길 기대하진 않아. 

(프로필 사진 찍기 직전에 셀카)







처음으로 프로필이란 걸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사진을 찍어 보았지. 약 2~30분간 작가님께서 연신 셔터를 누르셨고 난 그 셔터 소리에 맞춰 춤이라도 추는 듯, 이 포즈와 저 포즈, 이 표정과 저 표정을 지어보았다. 약 100여 컷의 사진 중 절반 정도를 추리고, 거기서 다시 절반 정도를, 거기서 다시 절반 정도를 추리며 결국엔 단 두 컷, 가장 맘에 드는 컷을 골라야 했다.

 

40년 정도를 살아오며 내 인생의 단 두 컷을 고르라면 어떤 순간들을 꼽을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험날, 높았던 커트라인을 뚫고 합격한 날도 기억나고, 수능 시험을 치자마자 학교는 나 몰라라하고 떠났던 동해 바다도 생각난다. 대학원 합격날이라든가, 지원사업 합격과 같은 성과의 날도 기억날 수밖에. 아무 할일 없는 날, 그냥 구월이와 한가로이 누워 있는 순간은, 정말 시간이 멈췄으면 하면 생각이 들 때도 있지. 몇몇 행사들에서 짜릿한 진행을 마친 뒤, 마이크를 놓는 순간의 희열도 잊을 수 없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는 일출은 색다른 해의 모습으로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이중에 과연 고를 수 있어? 아니 못 골라.


당연히 지금 당장의 이 순간, 오늘 당장의 내 모습은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꼽히지 않는다. 내가 고를 두 컷엔커녕  100컷 중에 들기나 할까. 그럼에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래?"라는 질문에 항상, 아니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답하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지는 않아. 그러나 지금 가진 것들을 잃고 싶지도 않아.

 

여기저기서 고된 일들이 많았지만, 그에 비해, 나 잘 살아 있는 건 아마 이런 태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나, 늙어가는 걸 그리 두려워 하진 않는 것 같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렇게 화려한 조명을 받는, 기억날 컷들을 저장하는 일들은 줄어들 테다. 나 제법 똘똘했고 당찼으니까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삶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지. 그러나 이런 사진을 찍는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이렇게 프로필 사진 같은 거 돈 주고 찍어보는 날은 나중에 내 인생의 100 컷 정도에는 드는 날이겠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뭐.

 

두 컷을 골랐다. 나는, 좀 날카로워 보이는 옆모습이 부각된 사진을 으뜸으로 꼽았지만, 작가님께선 글쎄...하는 표정으로, 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더 좋게 꼽아 주셨다. 머쓱했다. 나는 왜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 그래, 맞다. 웃고 있는 모습이 더 명장면인 게 맞을 거야. 되지도 않는 폼 잡는 것보다는 웃는 게 좋지, 맞다, 그게 맞아. 난 프로의 안목을 믿으니, 웃는 사진이 시집에 들어가게 될 듯하다.  


그리고 웃는 장면들을 명장면들로 기억할 거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명장면들로 "기억"하려면, 난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지금이 최고는 아니지만, 일단은 최적이니까. 옆에서 고양이가 찡얼댄다.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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