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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Jul 13. 2019

글쓰기와 살구 말리기

글감도, 식재료도 아끼면 똥 된다.

못 먹는 살구, 말리기를 결심하다.

아내가 과일을 좋아한다. 임신을 맞아 여러 지인분들이 과일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입덧도 하고 양이 많다 보니 다 못 먹는 과일이 생겨났다. 슬며시 슬며시 얼굴이 어두워지는 과일들이다. 그중 하나가 자두였다. 나도 과일을 막 좋아하지 않는 터라, 저 아이들을 어쩔까 고민을 했다. 문득, 언젠가 무엇이든 말려먹겠다며 충동적으로 중고 구매한 건조기가 있는 사실이 떠올랐고, 마침 토요일을 맞이하여 건살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구가 열몇 개를 하나당 6등분 하니 양이 제법 되었다. 살구들을 가르다 보니 이미 맛이 간 아이들이 있었다. 뿌듯했다. 타이밍을 잘 잡았어, 이때쯤 했던 게 맞는 것이군. 심지어, 말린 과일은 때로 생과일보다 맛날 때가 있으니까. 생과일이 상해서 버리는 가슴 아픈 상황보다는 잘 말려놓았다가 꼭 필요할 때 꺼내먹든 사무실에서 나누어 먹든 더 활용성이 좋아질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일에 기분 좋아지는 것을 보면 내 진로선택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 있는 생각도 하면서.


상해가는 글감, 애통함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 난 글 쓰는 사람이 될 거야. 이런 말과 다짐은 꾸준히 하지만 정작 글쓰기는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지만, 정작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할 때 오는 좌절감이란...

소재가 번개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내가 느낀 바로 그것. 지금 바로 당장 메모를 하고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거나, 사무실에서 정말 다른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때거나, 아니면 설거지를 해야 하거나 할 때가 있다. 글감이 생기지만, 그를 처리하지 못하면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에 식재료가 쌓이듯 글감도 쌓인다. 내 머릿속에서 글감은 진화할 때도 있지만, 결국 썩어 흐려지는 친구들이 더 많은 듯하다.


글감과 살구의 공통점

살구를 말리기 위해 칼을 들고 자르고 건조기에 정리하며 든 생각이 있다. 글감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과일은 싱싱해야 한다. 생 과일이 좋다.라는 인식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모든 싱싱할 때 먹는 것이 제맛이지. 허나, 지금 먹을 수 없는 과일을 싱싱하게 먹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면 언젠가는 썩는다. 오늘 먹을 양식은 계속 들어오니까,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글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글감이 떠오르면 항상 완성된 글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고, 한두 차례 더 고민을 하고 깊게 깊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생각을 조금 접어야겠다. 좋은 재료가 들어오면, 싱싱한 상태에서 완전한 요리를 하면 좋겠지. 허나, 그러지 못한 상황이 현실이다. 요리해야 하는데... 요리해야 하는데... 하며 요리할 시간도 없으면서 냉장고 안에서 상해가는 재료를 바라만 보던 나이다. 고민해 봐야겠다. 쌓이는 글감을 썩도록 놔두지 않고, 당장 요리하지 않더라도 살구처럼 말려놓는 방법은 없을까? 맛과 향은 보존하고, 형태는 변하지만 그 또한 여러 상황에서 쓰일 수 있도록.



살구를 말리기 위해 잘라 정렬한 모습. 당장 먹어야 하는 생과일에 비해 말린 살구는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글감은 이렇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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