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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Aug 17. 2022

나를 찾아가는 100가지 질문_열두 번째

나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취미와 특기를 쓰는 공간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수십 개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서류 전형 합격 하나만을 매우 손꼽아 기다렸던 시기였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의 한 줄, 한 칸을 채울 때 '이게 서류 전형의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을까?' 여러 번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고작 취미와 특기란인데도 내가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내용으로, 나를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는 내용으로, 다른 지원자들과 나를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차별화된 내용을 적어야 지옥문 보다 더 심한 이 취업문을 박차고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작성한 취미와 특기는 아주 흔하디 흔하 것이었다. '취미 : 독서, 영화감상', '특기 : 정리정돈'. 취미는 가장 흔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독서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정리정돈이 특기라니 지금 내가 봐도 정말 기절초풍할 정도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무언가가 나는 없는 것일까'라고 자괴감이 들었던 적이 있지만 어쨌든 취업문을 통과해서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때 내가 썼던 취미와 특기는 나의 합격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할 때 한 선배가 물었다. 

"넌 취미가 뭐니?"

"취미요? 음.. 독서? 음악 감상? 영화보기... 요?"

"어떤 것이든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창구를 꼭 만들어 둬. 그래야 하루하루 버티면서 산다."


 '이것이 바로 직장 선배의 직장 생활 노하우인가?' 직장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데 사람 만나고 술 마시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취미를 만들어 보라는 선배님의 조언에 내가 좋아하는 것, 오롯이 나만을 위해 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창하고 멋지고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는 취미가 아니라 취미 활동을 하면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갖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기쁨과 행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취미 활동이 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단연코 책 읽기가 첫 번째 취미였고 두 번째는 음악 감상하면서 무작정 걷기, 세 번째는 와인 마시기였다. 


 작가로서 부끄러울 수 있지만 나는 책을 빨리 못 읽는 편이다. 대각선 읽기, 속독법 등 빠르게 다독하는 법을 터득하여 인생이 바뀌었다는 교육도 있지만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는 편이다. 사실 책 읽으면서도 집중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어서 주변의 움직임이나 지나가는 사람, 들리는 음악 소리 등에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놓쳐서 읽던 곳을 다시 읽은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글자 하나하나 곱씹고 음미하면서 읽거나 펜을 손에 들고 있다가 흐름이 끊길 것 같으면 나만 볼 수 있게 표시를 해두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책 속에 몰입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집중하는 시간이 짧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떠도는 잡생각이 들지 않았고 책에 있는 글자와 내용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선호하는 분야의 책들이 있지만 일부러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라서 읽어 본다. 이번에 자기 계발을 읽었으면 다음에는 과학, 환경, 정치, 인문학 등 전문 서적을 제외하고는 장르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 취미는 걷기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 나에게는 과격해 보이는 공놀이인 축구는 학창 시절부터 잘하지 않았고 운동 신경도 없어서 구기 종목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운동은 해야 되니깐 특별한 장비 없이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고 두 발과 신발, 갈 수 있는 길만 있다면 걷기 운동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있든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거기에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걸으면서 느껴지는 힘듦과 피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걷기를 통해 건강 챙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된다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관계적으로 해결하고 싶은데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추천한다. 안 풀리는 그 한 문제만을 계속 생각하면서 걷다 보면 답이 쉽게 나오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유레카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해결책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먼 타지인 스페인까지 가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데에는 분명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번째 취미는 와인 마시기다. 이 취미는 성인이 되고 나서 갖게 된 취미이다. 소믈리에처럼 전문 자격과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와인 공부를 하고 다양한 와인을 맛보며 나에게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사실 독서와 걷기 말고 좀 고급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체도 할 수 있고 멋있어 보이는 취미 활동을 갖고 싶어서 와인을 공부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와인을 아주 조금 공부한 덕에 주변 지인들이 와인 선물을 할 때, 와인과 음식 궁합을 물어볼 때 나만의 와인 리스트를 추천해줄 수 있게 됐다. 

 와인이라는 술을 마시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와인의 색깔과 향, 맛을 느끼다 보면 가보지 않은 외국의 유명 와이너리에 와 본 것 같고 같은 포도 품종이지만 지역과 환경, 숙성 방법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낸다는 것이 무척 신기해서 좋았다. 

사진출처 : 셔터스톡




 가만히 나의 세 가지 취미를 떠올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취미 활동을 하는 동안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내가 아니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말끔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잊고 취미 활동을 하는 그 행위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취미 활동을 하면서 싫었던 적, 미뤘던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취미 활동은 나를 재충전하고 바쁜 일상과 지친 삶 속에서 나에게 행복과 즐거움, 여유를 선물해준다는 것이다. 

 시간의 양을 떠나 취미 활동을 하고 나면 나의 몸과 마음이 핸드폰 배터리처럼 완충되어 있었고 다른 업무, 다른 행동, 다른 도전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어 줬다. 이것이 바로 직장 선배님이 말한 '취미 생활을 해라'라는 말의 아주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요즈음에는 취미 생활을 정말 잘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50 ~ 60대 아저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양한 취미 모임이 생겼고 그 모임을 연결해주는 플랫폼도 정말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집 밖을 나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될 때 집으로 나의 취미 활동 용품을 배달해주거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정기 배송해주는 것도 생겼고 비대면 온라인으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환경도 이미 구축되어 활성화되고 있다. 취미 부자라는 말도 생기면서 취미가 수십 가지인 사람도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사람과 취미가 좋아서 아예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취미 활동이 상당히 각광받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취미를 갖고 있나? 또는 나는 어떤 취미를 갖고 싶은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나의 취미를 통해 나라는 사람은 여럿이 하는 것보다는 혼자 운동하거나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고 다른 사람과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나의 영역을 침범받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혹시라도 지금,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처럼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거나 나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싶다면 나의 취미 생활을 한번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나'라는 사람이 조금 이해가 되고 나의 성향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취미가 곧 나고 나의 성향이 결국 나의 취미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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