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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Apr 01. 2024

여덟 번째 이야기 : 파비안(2)

파비안과 나의 이야기

그녀의 가장자리만을 거닐어 본 사람은 순진한 연두색 해변가를 기억하겠지. 하지만 그 속에 다이빙해 본 사람은 알거야. 이 바다는 붉은 색 용암을 품은 깊고 진한 심해라는 것을.

(본 인터뷰는 1편과 이어지는 2편입니다.)


Q7.

내 인생의 전체나 한 부분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로 만들고 싶나요왜 그런지꼭 넣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

임순례 감독님의 <리틀 포레스트> 같은 힐링 장르로 만들고 싶습니다.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균형을 잡고 한 줄기 희망을 찾는 엔딩.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장중한 대서사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본 관객들은 다시 찾는 영화요. 아, 약간의 로맨스적 요소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습니다:)     

-

위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일단 제가 삶의 기치로 삼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 수오(守吾)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교과서에 실린 정약용의 ‘수오재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그 뒤로는 쭉 이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수오’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어떻든 그때그때 제가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알고, 필요하다면 많은 것을 절제하고 자신을 엄격히 통제해서라도 제가 자아를 실현하고 고차원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꼭 넣고 싶은 구체적인 장면은 없지만, 주인공이 우울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 또다시 우울해하다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울에서 회복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삶에 대한 성찰이든지 물리적인 도구든지 아무튼 무언가를 얻도록 하고 싶어요.               


Q8.

특별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물건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해주세요.     

-

저는 물건에 처음부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제 손에 별 무리 없이 길들고, 정신 차려 보니 오래 함께하고 있었던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는 편입니다. 또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이런 식으로 출현한 소중한 물건들도 여러 개인데, 개중 단연 특별한 것은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남색 빈폴 배낭입니다. 제 모든 학업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고, 더 나아가 제 모든 역사의 목격자라고 해도 참인 진술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가방은 제가 불과 작년까지도 메인(主)으로 썼던 가방으로, 거의 매일 들고 다녔습니다. 10년간 a/s 없이 잘 썼고, 작년 말에 한 번의 a/s를 받은 뒤에도 몇 달간 계속 불편함 없이 쓰다가, 올해 초 제가 새로운 가방을 사게 되면서 잠깐 아빠에게 넘어갔었는데, 아무래도 그 녀석을 잊을 수 없어서 곧 도로 가져올 예정입니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쯤 되면 이름이라도 지어주어야 할 것 같군요….) 

수납공간은 큰 공간 2개, 작은 공간 2개가 전부이지만 일단 배낭의 기본인 네모 박스 모양새가 잘 유지되고,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물건이 들어갑니다. (작은 공간 2개 중 하나에 {테이프/핸드크림/밴드/줄자/타이레놀/다크초콜렛/립밤/마이크커버/유선이어폰/usb/ 비상용 볼펜/ 딱풀 /스틱형 사과식초/ 손거울/ 선스틱}을 넣고도 남았으니까요.) 또, 단정하면서도 캐주얼한 디자인이라 일상복에도 정장류 옷에도 잘 어울립니다. 심지어 가죽 소재라, 갑작스런 비에도 어느 정도는 내용물이 보호됩니다. 그야말로 ‘인생 가방’이라고 칭할 수 있겠습니다.      

-

답변을 하고 나니 물건에 담긴 이야기가 아니라 가방 홍보를 한 꼴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저에게는 이러한 기능성이 곧 물건의 이야기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ㅎㅎ          


Q9.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중 가장 예민한 곳을 순서대로 꼽자면?

(ex. 시각 후각 … )

-패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등호로 오감의 순위를 매겨서 나열하는 것만을 원하고 이 질문을 주신 것은 아닌 것 같아 추가로 순위를 그렇게 정한 이유를 쓰려고 했는데, 순위도 모르겠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패스합니다용.. (--)(__)          


Q10.

어린 시절 또는 최근의 경험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은?

-

저는 공연, 그 중에서도 연극과 뮤지컬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간의 강렬한 기억 두 가지가 모두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 무대에서 연기하던 중의 기억입니다.

대학 신입생 때 처음 참여한 연극에서 조연을 맡았는데요, 시누이가 범죄를 당한 현장을 목격하고 목놓아 경찰을 부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몇십 번 연습했지만 감정도 눈물도 올라오지 않아서 스스로도 겸연쩍은 상태에서 본공연 날을 맞았습니다. 그 씬은 저의 제일 감정적이고 극적인 씬이었기 때문에 정말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이게 될까 하는 마음이 뒤섞인 채 무대에 섰습니다. 막이 오르고, 연습한 대로 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게 감정이 솟구쳐 눈물이 스며나왔습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미정(맡은 배역) 씨의 마음이 저를 통해 무대에 발현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 연극의 결말까지 가는 과정은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뒤로 몇 번의 무대를 더 서면서, 그런 경험을 ‘카타르시스’라 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카타르시스란 것은 정말로 강렬한-순간적이면서도 영원처럼 느껴지는- 쾌감이어서 저는 약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극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연극을 하는 것도보는 것도 모두 좋습니다.) 카타르시스가 담배로 상품화된다면 저는 골초였을 것 같아요.     

2) 뮤지컬 <팬레터> 관람 경험입니다. 

처음 접한 뮤지컬이라 놀라움이 배가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말이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극장에서 걸어나오는 길에는 모든 세상이 새로이 채색되고, 들어갈 때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오색찬란한 비눗방울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팬레터>와 그것이 선사하는 전율, 황홀, 감정의 무수한 굽이를 거쳐 마침내 닿게 되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뒤의 내가 이전까지의 나를 보며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가까지 하였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귀갓길에는 내내 내적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라져가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으려고 핸드폰 메모장에 고개를 처박고 기억나는 모든 것을 전부 적었습니다. 씬의 서술방식, 넘버의 호불호, 조명과 무대 세트의 활용, 배우들에게서 배울 것들, 나의 감정 등…. 

이후 저는 팬레터만을 보기 위해 2주 뒤에 서울로 가는 기차편을 다시 끊었고, 5개월 뒤의 지방공연에도 당연히 갔습니다. 아직까지도 팬레터의 모든 넘버를 찾아 듣습니다. 들을 때마다 다른 구간에서 울적 또는 흥감해집니다. 한 번 한 번 들을 때마다, 제 이해도가 한 층 한 층 쌓이며, 팬레터에 대해 쌓이는 감정이 두꺼워지는 느낌입니다.      

    

Q11.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약점에서 자라난다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자진해서 낮은 자리에 서려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자기 신뢰>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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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외모에 취약합니다. 속칭 얼빠 라고 하죠. 친구들을 사귈 때는 어떤 얼굴이든 상관 없는데, 잠재적 연인인 이성을 볼 때에는 제가 원하거나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면 바로 연애관계가 생길 모든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내 눈에만 잘생기면 되는 거 아니야?” 라며 짐짓 태연한 척 하고 있습니다만, 인스타의 돋보기 란을 좀 과하게 보는 날이면 이런 제 약점이 외모지상주의와 연결되려는 낌새(저 사람은 예쁘니까/날씬하니까 모든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행복하겠다, 류의 생각의 비약을 합니다)를 보여 조금은 괴롭습니다.                


Q12.

오랫동안 이어져 온 버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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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스러미를 뜯는 버릇이요. 이 버릇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억도 명확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 중 한 분과 남동생과 수영장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물에 퉁퉁 부어 손톱 옆에 살이 삐죽 튀어나온 것을 보고 어라, 하고 입에 갖다 대 보았고, 그 뒤로... 무려 16년간을 심해졌다 좋아졌다 하며 저와 함께하고 있네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부하는 상황에는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별로 없거나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상황에는 좋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 내내 손톱 주변이 멀쩡한 날이 없었습니다. 피딱지는 예삿일이고, 물어뜯은 곳에서 계속 고름이 나와서 손이 부은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버릇으로 인해 병원을 방문해야 할 일은 아직 없었습니다.      

-

심리적인 버릇도 하나 있는데요, 사람들이 항상 저를 싫어할 거라고 가정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항상 그 생각을 기반으로 행동해서 자의식이 과잉될 정도였습니다.(자의식 과잉이었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자 항상 어깨 위에 뭉근히 얹혀있는 것 같던 일상이 이제는 성능 좋은 바퀴를 가진 캐리어 정도로 느껴지더군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그녀가 한 말마따나,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내라고 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가정은 지금의 제 신체가 제가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요, 예를 들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뭐지, 내가 뚱뚱해서/못생겨서 쳐다보나?’처럼 연관됩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에 자려고 누울 때까지 매 분 매 초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번 정도는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생각해 보니 위의 11번 질문에 답변한 약점과 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Q13.

현재 어떤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해요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차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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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을 통해 나눔받은, 폭신하지만 약간 거친 재질로 짜여진 연한 갈색 라운드넥 긴팔 니트를 입고 있습니다. 3일 전에 다쳐서 팔꿈치가 까지는 바람에 오른쪽 소매는 위팔까지 걷어 올리고, 연고를 발랐어요.

바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올빼미와 부엉이와 달과 별이 자잘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가진 남색 잠옷 바지입니다. 한여름에도 긴바지를 입고 자는 제게는 안성맞춤인데요, 밑단의 넓이가 넉넉하고, 길이도 일어났을 때 너무 길지는 않되 발목 아래로는 내려오는 딱 알맞은 기장이라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주머니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잠옷바지입니다. 장볼 때 정도는 밖에도 입고 나가는데, 그럴 수 있을 만큼 무늬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금상첨화입니다.

사실 똑같은 바지를 두 벌째 입고 있는데, 저번 것은 그것을 입고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엉덩이 부분이 헤지고 찢어져서 얼마 전에 헌옷수거함에 보내주었어요. 요즈음에는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그 바지만 입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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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오늘은 친구에게 선물받은 잠옷 세트를 입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세트 잠옷을 하나 장만해서 기분을 내어 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던 저에겐 아주 단비같은 선물이었습니다. 친구의 설명을 빌리자면, ‘요루면’ 이라는 재질로, 가볍고 빨기도 쉽다고 합니다. 입고 이틀 동안 자 보았는데, 확실히 이전에 입던 잠옷(대학 체육대회에서 받은 티셔츠 + 상술한 부엉이 바지)보다 통풍이 잘 되고 가볍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옷을 안 입은 느낌마저도 잠깐 받았습니다.                


Q14.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공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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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대통령 출마라는 것은 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강한 열망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권력욕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후자는 정말 1도 없는 사람으로서, 제가 출마했다면 전자의 이유가 99%(1%는 혹시 나중에 생길 수도 있으니 남겨 두겠습니다.ㅋㅋ)일 텐데요, 그럼 이 질문은 저에게는 ’이 사회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느냐?‘ 로 읽히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한 가지가 바로 떠오르고, 그것은 빈부격차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개인의 노력이 평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실질적 빈곤층을 좀 더 살필 것 같습니다. 애매하게 차상위계층과 중산층 사이로 분류되어 나라로부터 금전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을 포함한 실질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토대로 교육프로그램 마련이나 심리상담 지원 등 비물질적인 지원들도 아끼지 않고 싶습니다. 물론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았지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실제로 표를 얻고 당선이 되려면 빈곤층의 마음보다도 기득권층의 마음을 얻는 것이 먼저일 텐데, 저는 당선은 못 되게 생겼군요.          


Q15.

내 인생의 BGM을 한 곡만 꼽자면그 이유와 주로 어떤 때 그 노래를 듣는 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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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Mraz의 ‘I won’t give up’을 꼽겠습니다. 잔잔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올해로 14년째 Jason Mraz를 좋아하고 있는데요, 그의 곡들이 모두 시대를 타지 않을 명곡이라는 사실은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대급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로 시작하고, 뒤이어 담담한 목소리가 들어와 위로를 읊조리다가, 후렴에서는 힘차고 거침없는 멜로디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이 곡은 저에게 엄청난 힘을 줍니다. 

I won’t give up은 아주 가끔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처음 몇 년 동안에는 랜덤으로 아무 때에나 생각나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이 곡이 그리워지는 순간을 깨달았습니다. 주로 힘든데 힘든 줄 몰랐을 때 떠오르곤 하더군요. 그래서 이 곡이 듣고 싶어지면, 오늘이 꽤 힘에 부치는 하루였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내가 꽤 힘썼구나, 하고 스스로를 평소보다 조금 더 챙겨주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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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과 별개로, 이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asmr 이외에는 리암 갤러거의 ‘All you’re dreaming of’ 라는 곡만 한곡 반복재생으로 듣고 있습니다. 가수 하현상씨가 커버한 곡도, 원곡도 모두 정말 좋아서 추천드립니다.      

쓰다 보니 제 추천 플레이리스트까지 곁들이고 싶어졌습니다. 정말 많고 많지만 딱 5곡만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1) 호피폴라 – 소랑 

2) Jason Mraz – Let’s see what the night can do

3) 정우 – 철의 삶

4) 김광석 – 혼자 남은 밤

5) Green day – Last night on Earth               


Q16. 특별 질문

오늘 이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최대한 솔직하고 날것의 말로 써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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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노트북에 일기를 주절주절 한두 시간씩 쓰곤 하니까 이번에도 재밌게 잘 써 보자~ 라는 생각에서 인터뷰를 승낙했었습니다. 질문지를 열어보고 나서는 ‘오, 예상했던 것보다 어렵다. 잘 써서 정돈된 텍스트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쉽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저찌 답변을 완료해 낸 지금도 저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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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저도 몰랐던 저를 알게 되고, 또 여러 분들께 보여드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파비안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이름 뒤에서 주절거리니 한층 더 솔직해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들은 제가 누구인지 모르실 테니, 제 결핍이나 불신, 어렸을 때의 경험 같은 것을 오프라인에서보다는 깊은 지점까지 열어둘 수 있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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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 생각을 최대한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릿속의 단순한 이미지 혹은 추상적인 느낌에 불과한 것을 텍스트로 치환하자니 여러모로 아쉬운데, 이 또한 지금의 저라 생각하고, 세 번 손본 뒤에 일단 답변을 종료합니다. 오늘은 정성껏 맛있는 점심을 요리해 먹어야겠어요.          


Q17.

마지막은 반대로 인터뷰어에게 보내는 질문입니다제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를 작성해주세요이번엔 제가 정성껏 답해볼게요.     

-

왜 저를 인터뷰 대상으로 삼으셨나요? 왜 제가 더 알고 싶으셨나요? 제가, 작가님이 일러스트 한 점과 그것을 그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나요?               


- 파비안님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고유한 생각을 수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파비안님은 저에게 겉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은연중에 항상 그 생각들이 더 원활하게 맑은 샘물처럼 밖으로 흘러내리며 표출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넘치는 생각에 비해 그것을 나눌 대상은 턱없이 적어보였거든요. 그래서 이 인터뷰집을 통해 마음껏 드러내보이길 바랐습니다. 결정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특별함을 담고 싶은 이 개성 넘치는 인터뷰집에 고유한 생각을 가진 파비안님이 꼭 필요했습니다. 저에게는 충분히 인터뷰집에 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또 색깔로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 인터뷰를 끝낸 시각 : 2024년. 3월.  24일. 오후  1시. 03분. ⟫ 


활자중독인 나는 장문의 답변 글을 맛있게 탐독했다. 두 세번 읽고 나서는 어딘가 익숙한 데자뷰를 느꼈는데, 여섯 번째 인터뷰의 대상자인 '선비'의 글과 어쩐지 결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비슷한 '결'이라는 것이 글에서 드러난다고 느꼈다.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사람의 글이다, 라는 인상이 글 곳곳에 검정 잉크처럼 존재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서 잘 정돈된 답변을 듣고 나니 하나도 정돈되지 않은 답변도 궁금해진다. 몇 년 뒤 재 인터뷰를 기획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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