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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Feb 05. 2020

크고 작은 하루 10일째, 울퉁불퉁하더라도

독일에서 논문학기를 보낸다는 것

요즘 내마음

나는 학부 때도 미술을 전공했어서 아직까지 논문을 써본 적이 없다. 보니까 논문을 쓴다는 건 알지 못하는 것을 파고들어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전체 프로젝트를 감독해야 하고 그래서 대단히 예민해진다는 뜻이었다. 물론 졸업 전시 준비도 비슷하긴 하지만 자율성이 더 크게 부여되는 독일 시스템 안에서 프로젝트 조직과 글쓰기 공포의 크기는 훨씬 더 크다. 논문 학기가 되자 나뿐만 아니라 학기를 함께 보내는 친구들 다같이 겁나고, 두렵고, 부쳐서, 각자 고립되는 중이다. 다함께 격주로라도 만나서 업데이트도 하고 불안도 털고 하면 좋을 텐데 각자 프로젝트 진행 상황이 다른 마당에 모두에게 맞는 시간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와도 자꾸 부딪힌다. 싸우지 않아도 이어지는 내적 갈등이여. 내 단짝 친구 아샤는 워낙 계획적인 여성이라 모든 게 미리 세워둔 스케줄대로 정시에 진행되어야 안도하는 스타일이다. 최근에 처음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되면서 미친 듯이 데드라인들을 쳐내고 있는 아샤는 동시에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주변에 계속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왓츠앱에 끊임없이 자기 진척 상황을 공유하는 통에 나는 계속 의견을 담아 답장을 해줘야 하는 데에 스트레스받고 있다. 뭔가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와야만 그제야 이야기를 꺼내는 나와 달리 과정 중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수용할 줄 아는 그의 태도가 무척 탐나면서도, 하여간 매 순간 진땀이 난다.


그래도, 이 와중에도 면대면으로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꾸 울퉁불퉁해지는 사이가 있을수록 만나서 같은 냄비에 숟가락도 담그고 해야지. 겨우겨우 외롭게 버티고 있으면서 누군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일만큼, 그걸 혼자 ‘해내는 중’이라 믿는 것만큼 안쓰러운 게 또 없다. 혼자 해선 안된다. 그게 내 유학기간에서 맞이한 가장 큰 도전이자, 배움이다.


오늘 점심에 수아와 나는 아샤를 초대했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여기에서 내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서로를 소개해주는 자리였던 거다! 사실 혹시 수아가 영어를 써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 조금 눈치를 살피게 됐다. 물론 수아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싱가포르에 일 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똑띠인 줄은 알지만, 직장 생활하다가 갑자기 외국어를 쓰자면 말문이 열리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수아는 곧 명랑하게 아샤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임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냄비에서 빨간 떡을 한 절씩 꺼내 우물대고 있자니 처음의 쑥스러움도 금새 사라졌다.


오늘은 동기 스테판 Stefan의 생일!

미국에서 온 스테판은 자주 빛, 자연, 소리에서 영감 받아 작업을 하는 친구다. 붉은 머리와 중저음의 목소리가 멋진 스테판. 동갑내기라는 게 믿기지 않게 성숙하고 의젓해서, 비록 말을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믿음 가는 친구다.


며칠 전 스테판이 저녁에 바이마르 서쪽에 위치한 언덕 Kirschbachtal에서 모닥불을 피우자고 했다. 학과 친구들이 간단히 구울 재료들을 들고 모처럼 하나 둘 모였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바람이 꽤 차갑지만 해질녘 노을이 깃든 친구들 얼굴이 발갛다. 주변 나무를 대충 꺾어서 소시지와 파인애플, 사과를 끼우고 한참을 돌려가며 구웠다. 여기 꺼내진 재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다같이 먹는다. 다함께 생일 축하를 전하며 스테판과 한 명씩 포옹했다. 누군가 사온 케익 한판을 칼 대신 카드로 스윽 밀어 잘랐다. 아샤는 구름(스테판 논문 작업에서 하늘과 구름이 나온다)을 한껏 그린 카드를 선물했다. 수아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함께 지는 해를 보면서 시내로 걸어 나왔다.


사실 학과 친구들이 꽤 많이 모인 만큼 이미 불편할대로 불편해진 사이가 된 이들도 한데 둘러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은근히 따돌림당하는 친구, 따돌리는 친구, 작년엔 친했는데 올해 어쩐지 갈라선 친구들, 그래서 일부러 새로 친해진 친구와 더 유별나게 깔깔 대는 친구... 나는 이런 관계들이 너무 신경 쓰이는 편이라 거기에선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지만, 여기에서만큼은 그걸 부러 더 쓰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그럼에도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에너지를 더 기억하고 싶다. 둘러앉았을 때 ‘우리들’이 되는 이 장면을 더 담아두고 싶다. 서로 만나면 속으로 욕하고 불쾌해하다가 화톳불 앞에서 꼬치를 돌리며 뭐, 다음해 생일들은 더이상 함께이지 않겠네라며 조금 아쉬워도 하는 이 모종의 귀여움. 혼자 해선 안될 일이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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