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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hoda Oct 22. 2024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공주도 아닌데 완두콩이 불편한 이유에 관하여

희귀성(姓)으로 어딜 가든 주목을 받았다. 특히 새 학기 첫날 출석을 부를 때면 유독 심했다. 대학생 때 처음 만난 교수님은 날 중국인 유학생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예약 전화할 때가 가장 고역인데 풍을 한 번에 알아들은 적이 없다. 알아들었어도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송한나 또는 홍한나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이름을 말할 때는 꼭 풍선 할 때 풍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이름의 가운데 자를 가린다. 하지만 풍○나는 전혀 개인정보가 보호되지 않는다. 몇 안 되는 전국의 풍 씨들이 천인공노할 일이다. 


독특한 성 때문일까. 유독 나에게는 보통의 사람들은 좀처럼 겪을 수 없는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대학시절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다는 신입생 후배가 있어서 지갑을 탈탈 털어 온갖 당근을 먹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리플리 증후군 신입생 엑스맨이었다던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풍한나 시트콤, 풍트콤이라며 다음화를 기다린다. 애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관심종자의 본성과 개그 욕심이 들끓는다. 이거다 싶은 사건이 생기면 모니터 빼곡히 온갖 메신저 창을 켜 와다다 다음화를 송출한다. 일이고 뭐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흐름이 끊기면 시청률이 떨어진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풍트콤을 회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재방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풍트콤의 수많은 지난 화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당시에는 내 작은 세상을 가득 채웠던 사건들이 희로애락의 장르를 불문하고 휘발됐다. 분명 삶이 마비될 정도의 엄청난 일이었으나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시간의 부유물이 되었다. 


아마도 미취학아동 시절, 시골 쥐가 가끔 홀로 또는 동생 쥐를 데리고 도시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갈 때가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라떼는 어린 시골 쥐들이 회수권 야무지게 챙겨서 버스 타고 시에서 시를 건너가는 일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용감하게 모험을 떠나는 목적은 우리 집에는 없는 디즈니 동화책이었다. 그중 <공주와 완두콩>이라는 책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를 아무리 여러 겹 깔아도 고상한 공주님은 요 속의 완두콩 한 알이 불편해서 잠을 못 잔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풍트콤에 에너지를 쏟았는지 내 마음속 두껍게 깔린 요에 감춰진 작은 완두콩을 찾아본다. 풍 씨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 풍(風)을 떠올리지만 사실 내 성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성씨 풍(馮) 자를 쓴다. 희귀성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디즈니 동화책 속 공주쯤 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깨달음이 몰려온다.


회의감이나 무용론에 빠진 것도 아니고 우울하지도 않다. 완두콩을 빼낸 이부자리의 안락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차분하게 나와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나는 특별하지만, 나만 특별하진 않다. 이제 그만 풍트콤은 종방을 하는 게 좋겠다. 풍트콤의 수신료였던 열렬한 리액션들도 더 이상 청구하지 않는 게 좋겠다. 지나간 일들은 부유물로 떠다니게 두고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무게를 느껴보자.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먼지가 되기 전에, 아직은 조금 특별할 그때에 곧 사라질 일들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해 보자. 어차피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는 다 보통의 인간이고 보통의 인생일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아, 마음속 완두콩을 빼내고 나니 잠이 썩 잘 올 것 같다.



Everyday is yesterday.
We don't look back. 
Go forward with no regrets. 
We, the young, forever mercy. 

혁오 - Young Man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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