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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r 14. 2024

임민혁 선수의 은퇴 소감에서 느낀 삶의 가치

훌륭함만이 삶의 정답은 아니기에

얼마 전, 도서관에 갔더니 '사람책 도서관'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었고, 문의할 경우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코너인 것 같았다. 때때로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 때 그 사람의 한 페이지를 읽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주,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미처 알지 못했던 K-league의 한 축구 선수가 쓴 글을 읽었다.  축구 선수로서 은퇴 소감을 밝히는 글이었는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쓴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해당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출처 : 임민혁 선수 인스타그램

서른 즈음이면 대충 압니다. 세상에는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포기하지 않고 끝내 쟁취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훌륭함만이 삶의 정답은 아니기에 한치의 미련 없이 떠나봅니다. 


저의 축구 인생은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아주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정정당당하게 성실히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멋진 세계에서 멋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내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오히려 언젠가부터 느꼈던 저보다 열정 있고 성실한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자기 비하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속이 후련하고, 적어도 추한 선배는 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 하나는 지키고 그만두는 거 같아 다행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면서 새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3.1일 새로 시작하기 날짜도 딱 좋네요. 여기저기 축하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모두들 감사했고, 잘 머물다 합니다. @k-league 


서른 중반의 내가 이 글을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미처 알지 못했던 어느 축구 선수의 글에서 지난 날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그럼에도 실패 앞에 무력했던 젊은 날의 열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버텨온 삶의 굳은살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 끝자락, 내가 끄적였던 기록들 사이에 이런 글이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서른이 넘은 나는 이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와 같은 순수한 야망을 꿈꾸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욱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을 쫓는다. 크고 작은 꿈의 크기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여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삶의 무게 추를 둔다. 


지난 날 가득했던 무모한 배짱은 잃었으나, 현실적 경험치는 매일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존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것이란 걸. 혹여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에게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인생의 여러 길 중, 하나의 길에서 실패했다고 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임민혁 선수의 말마따나 평생 간절히 원했던 축구선수로서의 삶이 끝난다 해도, 여전히 그에겐 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할 수 있는 새 인생이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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