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북해도 여행
2023년 여름, 홋카이도
이 이야기를 먼저 해두는 게 낫겠다. 나는 7년 넘게 한 사람과 연애를 했었는데, 2023년 여름에 홋카이도에 다녀온 일은 그 길었던 연애가 끝나고 나서 혼자 떠난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헤어짐을 겪고 이미 몇 번의 계절이 변한 후였는데, 내 주변에는 이제 좀 괜찮아질 때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과 아직은 힘들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여행에세이를 쓰기 시작할 테니 내가 둘 중 어느 쪽에 해당되었는지 굳이 직접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여행을 앞두고 내 삶이 크게 흔들리고 다시 불안정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미리 적어둬야겠다. 20대에 출간했던 두 권의 여행기에도 모두 밑바탕이 되는 '불안'이 있었지만, 그 불안이라는 것은 대게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원하는 삶의 방식을 실현시킬 능력이 내게 있는가'하는 질문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안정적인 직장이란 것은 없었지만 이루고 싶은 꿈과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이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대신, 인생의 꿈과 목표 같은 것들이 무척 희미해져 그런 것들을 품고 사는 감각이 어떤 건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20대에 여행기를 쓸 때 내 곁에는 항상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사람이 곁에 있었는데, 요즘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런 깊은 행복을 느끼는 일이 몹시 드물어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내게 처음으로 '여행이 어렵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돌아보면 모든 여행은 어려웠지만 출발 전부터 그렇게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홋카이도로 출발하기 전날 밤에 나는 거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여행하고 싶지 않다', '너무 피곤하다', '꼭 가야 하나?'. 20대 때 이미 한 달, 두 달씩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배낭여행을 하고 여행기까지 출간했던 나는 4박 5일 동안 일본에 다녀오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관성 때문인 듯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삶의 관성이 되어서, 무턱대고 비행기표를 끊게 한 것이다.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불안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 여행이었으니까. 그리고 여행은 항상 삶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이번에도 짧은 시간이나마 여행함으로써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행이 끝나면 변해버린 삶을 조금 더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선택지들을 인정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항상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을 꿈꿨던 홋카이도로, 한여름에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조금 더 잘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