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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Jan 09. 2024

조율 한 번 해 주세요

제3화 꺼진 전등을 가리키는 여자

리(가명)씨를 처음 만난 것은  <몸으로 마음 알아채기>라는 심리 세미나에서였다.


2023 나는 소매틱 치료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상담실 밖에서 세미나를 열다. 세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던 날은 한여름 열기가 지면을 달아오르게 하던,  냉방을 해도 강의실 안으로 지글거리는 더위가 스며드는 불타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날은 목사, 선교사, 교사, 공무원, 상담사 등의 직업을 가진 참가자들이 모였는데 다들 조금씩 일찍 도착하여 세미나가 시작되기를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세씨는 시작 시간을 십분 정도 지나쳐 도착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강의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 세리씨에게서 한 여름의 더위를 뚫고 온 열기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는 세리씨에게 나는 "원하시는 곳에 앉으세요. 앞쪽으로 오셔도 좋지만 편안한 곳을 찾아 앉으시면 됩니다."라고 자리를 권했다. 세씨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강의실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홱 돌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이 빨랐지만 큰 보폭에 안정적인 느낌이 부족해 보였다.


소매팀 심리치료라는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심리치료 알리는 세미나에는 심리학에 학문적인 관심이 높은 분들이나 개인적 필요가 있는 분들이 찾아오는 편이다. 세의 몸은 개인적 필요 크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얼굴 표정딱딱하게 굳어있고 팔다리도 긴장 높아 보였다.


나는 그날 세미나에서 소매틱 심리치료의 정의와 특성,  다른 심리치료와의 차이점 등을 설명하였고 몇 가지 간단한 기법을 실습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자신의 주의(attention)가 향하는 대상이나 공간을 확인하고 참가자들과 나누 보는 것이었다. 공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자극에 주의를 두는지 확인해 보며 몸의 감각과 친해지는 연습을 해 본 것이다. 


"이 공간에서 어디에 시선이 머무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꽃, 액자, 가구와 같은 물건에 주의가 간다고 하기도 하고 창문처럼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나 화분처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날 강의실에는 한쪽 벽에 초록색 전등이 씌워진 램프가 줄지어 달려있었는데, 이 램프에 불을 켜놓으면 초록색 전등 아래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서 사람들은 이 램프 시선이 간다는 말을 자주 하고는 했다. 세리씨 역시 이 초록색 전등을 가리켰는데, 흥미로운 것은 세리씨는 불이 들어온 초록색 등 사이에 꺼져있던 등을 가리 것이다.


"불 켜진 등도 있는데  불이 꺼진 등을 가리키셨네요."라고 내가 물었다.

"불 켜진 등은 눈이 너무 부셔요. 불 꺼진 등을 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불 꺼진 등과 켜진 등을 번갈아보는 세리씨는 눈을 찡그리며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는데, 자신이 말한 것이 맞게 느껴는지 재차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괜찮은 자극이 세리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90분의 정해진 세미나 시간을 마치고 다른 참가자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자, 세리씨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좋은데 또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많은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다가 결국 맨 뒷자리로 옮겨가 자리를 잡았던 세리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동시에 도망가고 싶은, 대상에 대한 극한의 양가감정이 그녀의 몸에서 느껴졌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살려고 왔어요."

그녀의 솔직함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살려고 왔더라도 초면 날것의 그대로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힘든 마음으로 왔더라라도 우물쭈물하다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까지 솔직한 것은 솔직함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증거이고 동시에 자기 마음을 적절히 가릴 수 있는 경계가 무너질 정도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증거였다.


세리씨 몸 전체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끓는 것 같았다. 그 들끓음을 못 본 척하지 못 나는 세에게 내게 연락할 방법을 알려다.


"상담실에 한 번 오세요. 제가 한 번 봐드릴게요."라고 말을 건냈다. 세리씨 얼굴에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은 듯한 안도의 표정이 스쳤다. 이렇게 시작된 세씨와의 만남이 소매틱 심리치료를 함께 탐험하는 여정으로 이어지리라고 그날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담자 개인정보는 내담자 정보보호를 위해 변경되었으며 그 외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싣지 않았습니다. 몸으로 마음을 고치는 소매틱 치료를 알리는데 본인의 사례 공개를 허락해 준 세씨(가명)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음을 고치는 작가 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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