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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칸나의 그림책방 Aug 08. 2018

'미스터션샤인'  그리고 '엘리자베스 키스'의 조선

낭만의 시대 : 구한 말 조선을 보는 창


과거를 보는 창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 보면 가끔 '40년 전 서울', '40년 전 한강' 이런 게시물들을 봅니다.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죠. 40년 전이라고 하면  부모님 세대는 그 시간을 직접 경험했을 테니까요. 대한민국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인지, 40년 전 사진들만 봐도 괜스레 아련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정말 아름다운 시대였는지. 과거는 늘 현재보다 매력적인 듯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곧 예쁜 과거로 추억되겠죠.


과거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그 시대를 경험할 수는 없지만, 문학과 그림.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시대를 느껴볼 수는 있어요. 오늘은 낭만의 시대로 불렸던, 구한 말 조선의 모습을 듬뿍 느껴보려 합니다.



미스터 선샤인

그리고 엘리자베스 키스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역사물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저는 이 드라마 역시 빼놓지 않고 시청 중인데요. 역사적 고증이나 캐릭터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드라마만큼 그 시대에 퐁당 빠질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또 있을까요. 회를 거듭하며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영상미에 넋이 나가 있을 무렵,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학창 시절 우연하게 알게 된 엘리자베스 키스. 그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영국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이 끝난 직 후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녀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서울에서 줄곧 지내지만 평양과 원산, 금강산 등지를 여행하며 조선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어요. 구한 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그것도 여성 화가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조선은 어떤 모습일까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 그려낸 조선과 비슷할까요?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이토 신수이,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 1922 , 목판화

엘리자베스 키스는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 태생의 화가입니다.  그녀는 유복한 가정의 막내딸이었고 그 당시 여성들이 그러했듯 정식으로 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그녀가 28살이 되던 1915년, 키스는 그녀의 언니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강렬한 매력에 빠진 그녀는 영국으로 되돌아 가는 귀국선 티켓을 팔아, 잠시 그곳에 머물 여비를 마련하게 되죠. 짧은 방문일 것 같았던 일본 여행은 5년간이나 이어졌고, 그녀는 일본의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일본 판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는 영국에 귀국하기 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조선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당시 조선은 무자비한 식민 지배로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였는데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폐쇄적이었던 조선에 대해 그녀는 처음에는 꽤나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조선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화폭에 담기로 결심합니다.



◁새해나들이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 아침수다, 함흥 A Morning Gassip, Hamheung , Korea, 1921    


 키스는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30만 명 정도였고, 서양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숫자도 극히 적어서 이들끼리는 꽤나 친하게 소통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제임스 게일 James Gale 박사와 교류하며 비교적 빠르게 조선사회에 스며들었습니다. 제임스 게일 박사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1890년대에 한영사전을 만들기도 한 당시의 '조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스는 게일 박사를 통해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소개받고, 그들의  초상화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게일 박사 덕분에 그녀는 평민들의 생활 모습과 더불어 조선 상류층의 모습도 직접 그려낼 수 있었어요. 낯선 이방인 여성에게 조선사회가 친절하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죠.  그녀는 일본이나 중국, 필리핀 등지도 여행했지만 조선에서 만큼  친밀하게 그 사회와 교류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게일 박사의 도움으로 김윤식의 초상을 남기기도 하였는데요, 그녀가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방금 그 유명한 귀족 노인 김윤식 자작의 초상화를 그렸답니다! 주선은 게일 박사님이 해주셨어요. 한 번은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에는 저 노인이 궁중 복장을 입고 모델을 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박사님께서 '만약 영국에 온 어떤 인도 화가가 저 공작부인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 꽉 끼는 바지에 번쩍이는 장식을 달고 모델을 서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어떻겠소?라고 하시더군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결국 노령의 자작은 궁중 복장 차림으로 제 모델을 서주셨답니다!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인용


◁ 김윤식 자작 Viscount Kim Yun Sik, 1922 , 수채화   △ 장기두기 The Game of Chess, 연도미상

  


키스는 고적지나 풍경을 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조선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에는 전통혼례, 서당 그리고 연 날리는 아이들 같은 일상적이고도 특별한 순간들이 따뜻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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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당, 연도미상, 수채화  △ 한국의 신부 Korean Bride, 1938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는 방 안 상석에 앉아 있었어요. 몸집이 자그마한 신부는 마치 밀랍 주형틀에서 그대로 부어낸 것처럼 전혀 움직임이 없었어요. 반짝이는 머리에 은과 산호로 장식된 우스꽝 스러운 화관을 얹고 있었죠. 얼굴은 물분으로 하얗게 칠을 했고, 눈썹은 높다란 반월형으로 그려져 있어요. 밝게 칠한 입술은 어찌나 앙 다물었는지 본인 결혼식인데 먹을 수 조차 없겠더라고요. 신부는 실제 사람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존재처럼 보였어요.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인용



키스, 조선을 그리다


  1919년 가을, 도쿄로 돌아간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에서 그린 인물화와 풍경을 미츠코시 백화점에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한반도 밖에서 한반도를 소재로 연 최초의 전시회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인 의미가 있는 전시였어요. 이 전시를 통해 키스는 일본 목판화의 대가인 키스와 와타나베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이후 많은 작업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1년 다시 한국을 찾은  키스는 그해 9월 20일. 지금의 소공동에서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이 당시만 해도 미술 전시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이제 막 미술가 협회가 꾸려졌던 1920년대 초에 서양에서 온 여성 화가가, 서울에서. 그것도 조선을 그린 그림을 전시했으니. 파격적인 행보라 보아도 무방하겠죠. 그녀의 전시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녀는 "일본 총독 부인부터 학생들까지 모두 왔죠. 그날 전시회가 끝날 즈음에는 김치 냄새가 진동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제 그림에 관심 있다는 걸로 그만한 증거가 어디 있겠어요? "라는 유쾌한 편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달빛아래 서울 동대문 Moonlight ar east seoul,1920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Returning from the Funeral, 1922

 

  키스는 로제타 홀 박사와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로제타 홀 박사는 한국 최초로 여성을 위한 의과대를 창설한 인물인데요. 그의 아들 셔우드 홀 박사는 당시 난치병이자, 위험한 전염병이었더 폐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폐결핵 요양원을 설립해 치료에 앞장선 인물 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홀 박사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홀 박사의 요양원 모금을 위한 크리스마스 실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실에 키스가 자신의 한국식 필명인 '기덕 奇德 '을 적어 넣고, 동양식으로 낙관도 찍었다는 점입니다. 영국 화가의 한국식 낙관이라. 단순한 호기심의 이방인으로서가 아닌,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는 화가였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키스는 이후 한국을 떠나 중국과 일본의 북해도, 그리고 필리핀 등을 여행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영국에 돌아가 화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런던에서 단독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명성을 날리던 1930년대에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일어나고, 일본은 미국과 그녀의 모국인 영국을 적국으로 만들었죠. 2차 세계대전 내내 그녀의 전시는  무산되었고, 일본과 동양을 소재로 한 그녀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키스는 전쟁이 끝난 1946년에 한국 방문기를 책으로 출판하였고, 여러 잡지에 한국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던 그녀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56년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낭만의 시대, 그 시간을 느끼다


◁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 역. 배우 김태리    △ 민씨 가문의 규수, 1938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은 모든 조선인의 존경을 받는 조선 최고 명문가 여성입니다. 애기씨라 불리는 다소 귀여운 이름과는 다르게, 위엄 있는 말투와 단아한 외모를 뽐내는 캐릭터죠. 화려한 한복 차림으로, 등장할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고애신. 키스의 그림에도 애신을 떠올리게 하는 조선 명문가 규수가 등장합니다.

 그 옆에 있는 그림은 조선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던 민영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의 딸을 모델로 그린 것 인데요. 아직 어린아이지만, 단호하고 강단 있는 표정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아름다운 청색 한복을 입고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는 이 여인에게서 고애신의 모습이 떠오르지는 않나요?



◁엘리자베스 키스  <모자가게 The hat shop>,   연도미상, 수채화        △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엘리자베스 키스 , 평양강변, 1925

드라마와 미술작품. 두 가지 다른 장르로 하나의 시대를 느껴본다는 것. 비록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그 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이렇게 풍족한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낭만의 시대. 구한말의 조선. 일제의 탄압에도, 정신없이 쏟아지는 신문물에도 조선은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나 간직하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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