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소녀의 오싹한 심리전 : 스릴러 그림책
이 책은 2018년 2월에 출간된 비교적 신작도서입니다. 출판사 '웅진주니어'에서 나오는 시리즈 '웅진 모두의 그림책' 중 아홉 번째 도서입니다. '필립 잘 베르'라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인데, 아쉽게도 이 작가에 대해 크게 알려진 정보는 없네요.
'너의 눈 속에'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빨간 모자와 늑대'이야기를 재구성한 그림책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동화의 내용과 결말 또한 알고 있지요. 그러나 이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고, 나아가 새로운 장르를 탄생 시킵니다.
귀여운 소녀, 빨간 모자가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보통의 동화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내용에 대한 서술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립니다. 그러고는, 1인칭 적인 관점에서 늑대와 소녀의 시 선을 번갈아가며 보여 주는 파격적인 구성을 취하죠.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한 줄 이상의 설명은 없습니다. 그저 늑대의 생각을. 그리고 소녀의 생각을 간략하게 나타내줄 뿐입니다. 약간은 불친절한 이런 구성은 '그림책'의 특징을 극대화하며,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를 그림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늑대는 소녀를 발견하고 조용히 외칩니다. '저기 사냥감이야..!'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소녀의 시선은, 그야말로 천진난만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시 선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이러한 구성은, 어린 소녀를 보호하고픈 독자의 안타까움을 더욱더 커지게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소녀의 뒤를 쫓아가는 늑대를 어떻게든 말리고 싶게 만들죠.
작가는 아주 힘 있는 선으로, 그리고 극도로 세세한 묘사로 모든 그림을 완성시킵니다. 원작에서는 아름답기만 했던 숲길도, 작가의 손에서 음산하게 다시 탄생합니다. 나뭇잎 한 장 한 장, 늑대의 털 한 올 한 올을 공포스럽게 그려낸 일러스트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서로가 마주치는 순간. 소녀와 늑대의 시선은 서로를 향합니다.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와 늑대의 빨간 눈. 둘은 서서히 서로를 응시하고, 긴장감은 폭발합니다.
총 33장의 책의 모든 페이지는 흑백으로 그려져 있고, 화면에 유일한 색은 빨간색입니다. 독자를 숨죽이게 만드는 섬뜩한 현실. 하나의 사냥터 같은, 흑백의 현실 속에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홀로 동화 속에 갇혀있는 듯 보이네요.
책의 중반쯤 되면, 독자는 반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설마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을까...
늑대는 결국 소녀보다 먼저, 할머니의 집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조용히. 차분하게 소녀를 기다립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5세에서 8세 대상으로 출판했다고 하는데요. 물론 그림책이고 불건전한 장면이 묘사된 그림도 없으니, 아이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긴 합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이 책을 단순한 그림책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아이들 스스로 잔혹한 장면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읽었을 때 더욱 깊이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인 것은 확실합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생략된 장면을 상상으로 채워 넣게 되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이 잔혹한 현실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심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모두 상상으로 남겨놓고, 특유의 분위기만을 조장하며 '스릴러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공포스러운 묘사 하나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빨간 모자야 도망 가렴! 제발!
일러스트 자체가 굉장히 뛰어난 데다, 동화책의 구성 또한 새롭고 신비로워서 정말 정말 소장하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필립 잘 베르의 '너의 눈 속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