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취향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가 안주인 Apr 05. 2022

시간을 사고 싶다면

헤이리 GU 빈티지샵 (GU Vintage Shop)

무조건 새것이 제일 값이 나가고 좋은 시대는 갔다. 특정 시기에만 생산되어 지금은 단종된, 혹은 그 시절에만 가공했던 특유의 방식을 지닌 예전 물건들. 갖고 싶어도 쉽게 구할 수 없어 더 인기가 많은 귀한 몸, 바로 빈티지 가구다. 가구 역시 패션처럼 유행이 돌고 돌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다.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에 관심이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거다. 절제되고 간결한 디자인이 주를 이뤄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인테리어다. 현대 디자인의 정점이자 디자인 가구의 황금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으로 집에 머물 시간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추세.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가구 판매량과 높아진 집 짓기 수요가 이를 반증한다. 나 역시 작년부터 가구와 집 꾸미기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원래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 실물로 그려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미드 센추리모던 열풍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여러 제품들이 나왔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무난하단 거. 지나치게 독특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금방 질리지 않는다. 또 여러 요소들과 두루 어울리기에 시간을 갖고 하나둘씩 모으면 이내 멋진 집이 완성된다.


좋은 가구를 잘 관리해서 오래 쓰는 일. 빈티지 가구의 매력은 비단 희귀성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물건에 담긴 세월과 이야기를 가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한번 세상에 태어난 물건이 버려지지 않고 두고두고 쓰인다는 점은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나무는 나이테로, 굴과 재첩 조개는 껍데기에 새겨진 줄무늬로 세월을 이야기하듯 한 물건을 오래 쓰면 그 집과 사람에겐 그만큼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지유 빈티지 숍 외관


햇볕이 따가운 늦여름 어느 날,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지유 빈티지 숍(GUVS)을 찾았다. 인스타그램으로 새로운 컨테이너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 124점의 새로운 빈티지 중고 제품과 그동안 소유하고 있던 가구 소품 100여 점이 GUVS 헤이리 오픈 1주년으로 좋은 할인가로 나온다고 했다.


지유 빈티지 숍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건축을 공부한 아내와 함께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빈티지 제품을 공수해온다. 미드 센추리 유행이 돌면서 외국에서 빈티지 가구들을 바잉 해오는 숍이 최근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이들은 훨씬 전부터 움직였으니 그 안목이 대단하다.



행사 첫날, 오전 11시부터 오픈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숍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11시 30분쯤. 그런데 웬걸...! 대한민국엔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입장해야 했기에 대기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아 대기표를 받고 근처 식당에서 맛있게 간장게장을 먹고 돌아왔다.


이번 컨테이너의 주제는 'Facts and Figures


다행히 식사를 마치고 오니 전보다 한산해졌다. 체온 측정과 QR코드 체크를 마친 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쇼룸에 들어서자마자 현수막이 우릴 맞이했다. 'Save Our earth'. 환경문제와 구호에 대한 인식에 머물지 말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지유 빈티지 숍은 1층과 1.5층으로 나뉜다. 커다란 소파부터 테이블, 의자와 그림, 디자인 서적과 작은 소품 등 다양한 물건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미 주인을 찾아 팔린 제품들도 있었지만 눈으로 담아 가며 공부하는 맛도 있었다.




제품에 붙은 스티커 색마다 할인율이 다르다.


1층을 둘러보고 반개층 위로 올랐다. 자연광이 비치는 넓은 공간에서 의자들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네 팬톤 (Verner Panton)이 만든 S 체어에 시선이 뺏기고 만다. 한 피스로 된 최초의 플라스틱 의자면서 1975년까지만 생산됐던 허먼 밀러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975년 허먼 밀러사의 S 체어
노출 콘크리트에 플라스틱과 나무, 아크릴. 한 공간에 여러 소재가 섞이니 풍부해진다


숍을 전체적으로 다 둘러본 후 마음에 드는 두 물건을 추렸다. 앞서 말한 S 체어와 Brocoli 책장. Brocoli는 Bro와 Coli로 구성된 Studio D:O의 제품이다. 푸른색과 녹색, 노란색의 아크릴판으로 디자인된 책장으로 회전이 된다. 빛에 따라 표출되는 색 그림자가 또 다른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만든다.


320*320*980 / 400*400*570
책을 꽂지 않아도 이 자체로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

​고민 끝에 Bro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S 체어는 지금 집에선 둘 곳이 마땅치가 않기 때문. 일 년 뒤 호호가를 지은 뒤, 지금보다 넓은 주거환경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사할 때 굴곡 있는 의자가 상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Bro에 내가 좋아하는 색이 다 모여있다. 지금 집의 가구들에 생기와 활력을 주는 윤활제 역할을 기대해본다.




지유 빈티지 숍에서 제품을 구매하면 원하는 곳으로 배송해 주기도 한다. 지역과 거리에 따라 붙은 요금은 상이하다. 우리는 차 뒷좌석에 물건이 들어가 그대로 싣고 집으로 향했다. 여직원분이 친절하게 포스터와 제작 스티커들을 챙겨주셨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는가보다도 어떤 안목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눈을 가지려면 많이 보고 다니고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취향이란 게 생겨나 꾸준하고 지속적인 수집이 가능해진다. 파주 헤이리에 갈 일 있다면 GUVS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꼭 구매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자극과 영감을 받기에 충분한 곳이다.


구매 영수증을 담아주는 봉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