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 그 흔한 유학과 자취생활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나에게 결혼은 또 다른 시작이자 '내 공간'을 의미했다. 쓸고 닦고 어찌나 열심히였는지. 빈집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기만 해도 마냥 행복했다.
신혼살림을 꾸리고 우리의 취향을 묻혀가니 텅 비었던 집이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날그날의 선택으로 물건을 사고 식물을 키워갔다. 집안을 둘러보면 곳곳이 추억이 그득하다.
연애 기간이 길어서일까 아니면 '결혼은 현실'이라는 진리를 빨리 받아들여서였을까. 결혼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삶보다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했다.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은 남편과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데 '함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여러 번 던졌다. 거기에 대한 동일한 답이 우리를 식장으로 이끌었고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배우자, 혼인서약, 둘이 살아갈 집. 이 세 가지만 있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이뤄지진 않는다. 예상치 못한 감정들, 복잡한 이해관계, 잘 안다고 판단했던 배우자의 색다른 모습. 연애 때처럼 잠깐씩 만나 내가 좋아하는 구석들을 수집하는 시간은 보기 좋게 끝났다. 마음속 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한 공간에서 오래 두고 볼 삶의 단상을 마주하게 된다.
집은 케케묵은 감정이 지독하게 쌓여가는 공간이자 거짓말처럼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폭포 같은 곳이다. 같이 붙어있어서 힘들고 같이 붙어있으니 깊어지는 아이러니함의 연속이랄까. 그렇기에 집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어 한 가정이 성장하는 땅이라 할 만하다.
+ 여기서 오해는 말라. 내가 해석한 결혼은 꽤나 긍정적이다. 세상에 나쁜 결혼은 없다. 다만 당사자들의 접근 방식과 태도에 있어 미숙함이 있었을 뿐. 함께하고자 했던 그 선택은 언제든 축복받아 마땅하다. 결혼을 하면 따뜻한 지지와 사랑을 주는 든든한 내 편을 만나게 된다. 몸과 마음,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또 다른 형태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덤으로 결혼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삶의 지혜는 어마 무시하다. 이 이야긴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시원한 바람과 물, 충분한 일조량도 중요하지만 작물이 잘 자라려면 모름지기 비옥한 토양이 필요한 법.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출산까지 마쳤다. 그새 나의 신혼은 여름철 채소처럼 훌쩍 자라 있었다. 코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인생의 큰일들을 겪어내니 집에 머무를 시간이 남들보단 곱절은 더 길었다.
'이 친구도 곧 뛰겠지?' 어느 날인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집에서 꼬마와 지낼 미래를 그려보니 "우리 같이 00 해보자!"가 아닌 "하지 마!"가 입에 붙을 것 같았다. 네모반듯한 고층 건물에 규격화된 구조. 누구나 똑같은 모양의 집에서 주어진 대로 사는 삶에 피로감도 더했다. 모르는 이들과 부대끼며 층간 소음과 흡연, 이웃 간의 배려를 논해봤자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기도 하고.
아이에게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집. 우리 부부가 주변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집. 많은 시간을 보내도 스트레스 덜한 집. 자연과 어울려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집. 2년마다 이사 다니지 않고 쭉 머무를 수 있는 집.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간다면 이런 공간에 살고 싶었다. 앞선 조건들을 충족하려니 도시의 편리함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이 아니면 이런 고민은 언제 하려나 싶다.
+ 첨언을 하자면, 나 역시 어린 시절 한적한 시골에서 자랐다. 아빠가 지으신 빨간 벽돌집에서 동생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정원의 동백꽃을 따다 소꿉놀이 밥을 짓고, 비가 한가득 내린 날 물 웅덩이만큼 근사한 수영장도 없었다. 매일이 새롭고 즐거웠다. 심심하고 지루한 날은 애써 떠올려보려 해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내 유년시절도 한몫을 했는지 갑자기 도시를 떠나자고 마음먹게 된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끝없는 선택의 연속인 나날들. 주저하다간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뭔가를 얻으려면 행동해야 하고, 그 움직임이 의미를 가지려면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우리 부부는 도시를 떠나자는 큰 결심을 굳혔다. 앞으로 집을 짓기까지 대략 일 년을 잡았다. 아파트보다야 주택은 투자수단으로써 경쟁력이 없지만 우리 가족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황금기를 풍요롭게 보내자고 다짐했다.
집을 지으려 이것저것 알아보니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순히 업체에 모든 걸 맡겼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고, 하자 있는 집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더라. 애석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만큼 보이고 공부한 만큼 내 것이 된다는데. 솔직히 말해 겁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이왕 결정한 거 중심 잘 잡고 한가운데 서보려 한다.
호기롭게 도시생활을 접고 곧 시골로 내려가기. 좋은 일 가득한 집이 되길 바라며 '호호가 | 好好家 | HOHOGA'라는 이름도 붙였다. 앞으로 그 여정을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겠다. 기억은 잠깐이지만 기록은 오래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