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을 위한 수학 대안교과서가 발간되었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나. 앞에 선 교사는 개념 설명을 하며 그래프를 멋지게 그려 보이고 예제를 풀어준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를 풀 차례다.
“오늘 몇 일이야? 1일? 1번, 11번, 21번 나와.”
그렇게 나가서 문제를 풀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지금 대학생인 딸이 중학생일 때부터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엎드려 자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포기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고1 수학 대안교과서 <수학의 발견>이 발간됐다. 중학교 <수학의 발견>이 완간된 후, 이 교과서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고등학교 교과서는 언제 나오느냐, 초등학교 교과서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중학교 대안 교과서 <수학의 발견>은 학생 스스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모둠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협력하는 가운데 개념 발견이 촉진된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중1-3 교과서 집필을 이끌어온 최수일 선생님(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에 나서지 않으니 교육운동단체가 할 수밖에 없다며 다시 고등 교과서 집필진을 꾸렸다.
1월 31일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집필진 19명 중 1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토요일 밤 9시마다 1년에 걸쳐 교과서 제작을 위한 세미나를 이어왔다. 2시간을 예정했던 토론은 밤12시가 되어 끝나기 일쑤였다. 한 선생님은 토요일이 두렵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일에 뛰어든 걸까. 문산제일고등학교 최광용 선생님은 이 질문에 ‘좋은 수학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답한다.
“아이들에게 수학은 사고할 수 있고 논리력이 길러질 수 있다는 걸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수학을 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실천해 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수학의 발견>에서 추구하는 학생 상은 교사의 개념설명과 문제풀이를 따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주도적인 인간이다. 이들이 스스로, 가능하다면 친구들과 협력하여 개념을 발견해내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고등 <수학의 발견>의 큰 특징은 초중고 수학 개념을 모두 연결하는데 있다. 중학교에서 수학공부가 어려웠던 학생들도 기꺼이 다시 도전해볼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교과서 1단원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다항식의 계산에서는 다항식을 특정한 문자에 대하여 차수의 크기 순서로 정리하면 편리하다. 일반적으로 다항식은 한 문자에 대하여 차수가 높은 항부터 낮은 항의 순서로 정리하여 나타내는데 이를 내림차순이라고 한다. 두 다항식의 덧셈과 뺄셈에서는 동류항끼리 모아서 계산한다.”
이 설명은 다항식, 차수, 항, 동류항 등의 뜻을 학생이 모두 알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막상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학생들도 이 단어의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고등 수학의 발견>에는 이런 문제가 실려있다.
이렇게 전에 배웠던 개념과 연결하는 작업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데 디딤돌이 된다.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나의 생각과 모둠의 생각을 직접 써 보게 한다. 함께 고민하고 이끌어낸 결론은 오래도록 머리에 각인된다.
제작 중인 교과서를 현장에 직접 적용하는 실험학교 중 대구 매천고등학교 우진아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지난 1년은 자신의 교직생활 중 수업 중에 가장 말을 적게 한 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은 ‘선생님이 개념 설명을 너무 잘해줘서 이해가 잘 됐다’고 말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학생 스스로 연결한 개념이 자기 안에 내재화되면서 교사에게 잘 배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 고등학교 수학 문제 중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은 여러 개의 개념이 복합된 문제다. 학생들은 개념 사이의 연결 과정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기에 이런 문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학의 발견>에서는 매 중단원마다 여러 개념이 문제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각 개념을 끄집어내는 질문이 수록돼 있다. 결국 이런 개념과 문제의 연결 속에서 고난도 문제 연습은 물론, 수능 대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개념을 발견하는 학습이 유의미하지만 입시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해소되는 지점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수학의 발견>이 많은 고등학교에 널리 보급되어 수학을 포기한 많은 학생들을 구출하는 일이다. 교과서를 만드는 일도 지난했지만, 이 일은 더 어려울 것이다. 전국의 각시도 교육청은 물론 눈 밝은 선생님을 찾아 나서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