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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Sep 04. 2020

기후 위기의 원인과 해결방법

에 관한 개인적 단상

환경파괴로 인한 현재의 기후 변화 위기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쪼개 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이 너무 많다.

둘째, 그 많은 인간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달라붙어 탐욕을 추구한다.


여기서 산업화와 기술발전이 가져온 어마 무시한 이득을 폄훼하고 깎아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일방적 악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미래는 냉정하게 진단해야만 한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지구가 두세 개 이상이 되는 것처럼 써재끼고 있으니, 끝은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삼모사도 이런 조삼모사가 없으니, 아침에 네 개가 아니라 열 개, 스무 개를 먹고 몇 날 며칠을 배만 움켜쥐다가 결국 굶어 죽고 말 형국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원인을 모두 해결하든지, 적어도 한 가지 요소라도 부담을 덜어야 한다.


인구를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쟁이나 학살과 같이 한 번에 대량의 인구를 줄이는 방법도 있고, 혹은 조금 느리지만 금방 죽을 사람들을 방치하여 죽게 두는 방법도 있다. 혹은 특정 지역 혹은 계층의 인구들을 살아는 있지만 사실상 자원을 거의 소모하지 않게끔 강제하는 방법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들 중 어떤 방법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효과도 그렇게 크지 않다. 이미 줄인다 하더라도 인구 자체가 너무 많은 데다, 인간의 재생산 능력은 엄청나서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으로도 기후 악화 속도를 늦추는 정도는 불과 몇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비용 대비 효과는 극악에 가깝다.


두 번째로는 인간을 죽일 수는 없으니 탐욕과 결합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구시대의 앙시앵레짐으로 버리고 다른 상상력으로 새로운 체재 자체를 세우는 일이다. 이 새로운 체제가 무엇이 될지는 내 깜냥으론 규정할 수는 없으나 기존에 인간의 욕망에만 기대어 성장하던 자본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특별한 이타성과 사회협력능력을 새로운 능력으로 상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케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혹은 이러한 체제 자체가 인간의 본성상 불가능한 것이라면(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최소한 자본주의 체제를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자가 드러낼 수 있는 욕심을 물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모두가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혹은 돈을 더 가지고 싶어서, 그리고 그 돈으로 더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소비하는 시스템은 유지가 불가능하니, 결국은 누구든지 간에 생산과 소비의 한계를 두어 전체적인 자원 소모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가령 일인당 한 달 전기 소비량의 제한, 정해진 기간 내 특정 운송수단을 이용한 이동거리의 제한, 매월 총 구매한 물건의 탄소배출량 제한 등을 두어 인간의 탐욕을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런 제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함을 추구하는 생태경제학에서 논의되어 왔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될 테고,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고 각자의 자본주의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아마 인생 전체를 자본주의적 가치에 헌신하여 충실하게 살아오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날 것이다. 힘이 있는 자들, 그리고 힘이 없더라도 돈의 힘을 신앙으로 가진 사람들은 두 번째 해결책을 지워버리고 손쉽게 첫 번째 해결책으로 손이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애초에 지금의 체제는 현재의 기후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당장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몇 퍼센트나 성장했는지를 보라. 코로나와 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추경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지를 보고, 전세계가 얼마나 많은 빚을 내어 구제에 용을 쓰고 있는지를 보라. 하지만 코로나 19가 끝이 아니며 주기적으로 새로운 전염병들이 유행한다면? 이번 장마가 그저 앞으로 맞이할 긴 우기를 알리는 시작이라면? 태풍이 해가 갈수록 더 강해지고 더 잦아진다면? 흉년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의 폭등이 계속되고 식량 생산이 급격하게 감소된다면? 산불로 인한 피해가 점점 더 커지고 누적되며 온난화로 식물들의 고사가 더 빠르게 진행된다면? 수온 상승과 산성화, 남획과 오염으로 해양 생태계가 무너지고 인간들이 먹는 어종들이 곧 멸종한다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로 도시 설계의 전면적 전환과 건설 비용이 해마다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면? 기후 악화로 인한 난민이 수백만, 수천만, 수억 명까지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어떤 도시와 국가에도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면? 그 피해가 해가 갈수록 쌓이고 악화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면? 그러면 정말로 우리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21세기 초반까지 해왔던 것처럼, 매년 경제가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주며 늘어나는 인구와 그에 따른 욕구를 지금의 시스템이 잘 채워줄 것으로, 내가 꿈꾼 미래가 몇십 년 뒤에 그대로 안전하게 있을 거라고 진정 확신하는가?

나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해결사도 아닐 뿐더러, 자본주의 스스로가 범인이다.


"자본주의냐? 삶이냐? 선택해라."

거리에 나선 유럽의 젊은이들이 외치는 구호다. 더이상 무언가에 투자하고 사고 팔고 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젊은이들의 결론이다. 새로운 생태적 상상력 없이는 생존도 없다고 믿는다.


이 모든 아포칼립스적 변화는 모두 전문가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예상되는 것들이고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들도 있으며 상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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