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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Oct 22. 2020

에어팟, 이 문제적 기기에 대하여

누구인가? 지금 누가 친환경 소리를 내었어?

나 원 참. 웬만한 뉴스에는 단련되어 있지만, 얼마 전 애플이 새로운 아이폰 12를 발표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는 허허거리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보자, 그러니까 구성품에서 어댑터와 유선 이어폰을 제외했다고 친환경을 내세운다고? 얼씨구, 물론 자원낭비와 탄소배출을 조금 줄이는 효과야 있겠지만 원가 절감을 하면서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지우고 자랑하는 기업은 처음 본다. 속이 시원하게 다 보이는데도 세상을 위하는 척하는 걸 보니 역시 저런 큰돈은 아무나 버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그런데 애플 제품들 중에 에어팟에 가장 큰 환경 이슈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다들 잘 모른다. 아이폰 12에 유선 이어폰을 빼면서 에어팟 구매를 더 많이 유도하겠다는 애플의 계산은 너무 뻔한데, 그렇게 애플이 더 팔아보겠다는 에어팟이란 녀석은 어댑터와 유선 이어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환경에 해를 입히는 심각한 골칫덩어리다.

에어팟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배터리 용량이 적어서 짧은 수명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구조상 부품들의 분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년 남짓이면 배터리 수명이 다하게 되는데, 아주 좁은 공간에 배터리를 밀어 넣다 보니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배터리가 외부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어서 부품들을 따로 분리해서 배터리를 교체하는 것도, 재사용 가능한 자원들을 수거하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보통 수명이 다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그냥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이들은 기기만 멀쩡하면 새 배터리로 교체해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고, 또 애플의 보상판매 프로그램을 통해 구매자 입장에서는 금전적 보상을 받고 애플은 필요한 부품과 자원들을 손쉽게 수거할 수 있다. 더구나 사진이나 주소록, 문자 내역 등의 개인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기도 애당초 부담스럽다.

하지만 수명이 끝난 에어팟은? 어차피 배터리 교체도 안되고,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보상판매도 안되는 데다 이건 더군다나 크기도 작다. 자기 소임을 다한 에어팟은 2년 뒤에는 아마 서랍 구석에서 한동안 뒹굴다가 끝내 언젠가 쓰레기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건 2년마다 새로 사야 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면서, 버리기는 정말 너무나 간편한 제품이다. 태생적으로 심하게 소모적이다.



요새 대중교통을 타면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보인다. 2016년 애플이 에어팟을 처음 출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블루투스 이어폰 열풍이 불고 있는데, 작년 에어팟 판매량만 해도 6천만대라고 하고, 올해는 1억대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단일 회사 제품으로는 1위). 아마도 다른 회사 제품들까지 하면 블루투스 이어폰은 한 해에만 못해도 수 억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여기에 들어간 재활용 가능한 자원의 양은 얼마나 될까? 충전 케이스를 포함하여 에어팟이 대략 50g 내외라고 하니, 올해 판매량만 계산해도 그냥 버려진다면 그 합산 무게는 약 5천 톤이다. 리튬전지에 필요한 코발트와 같은 중금속들은 미량이 포함되지만 억 단위로 팔린다면 그 총량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그 제품들이 아무런 자원 수거 없이 독성 물질을 지닌 그대로 땅과 강으로, 바다로 버려진다면? (그걸 바다에 누가 버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두자. 해양 쓰레기의 80%는 육지로부터 유입된다. 당신은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몇십 년 뒤에는 지구 반대편 바다 밑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말이다.) 헤엄을 치다 먹이를 찾다가 누군가의 입과 구멍에 쏙 들어가기 좋은 크기의 플라스틱들은? 새로운 에어팟을 만들기 위해 희토류를 채취하며 망가지는 제3세계 국가의 자연과 사람들은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팀 쿡 양반, 이게 진짜 지속 가능해? 당신 정말 진심이야?


결국 기사를 읽고 나서 애플코리아 고객지원센터에 문의했다.

-안녕하세요, 다 쓴 에어팟이 있는데 어떻게 버리면 될까요?

-네, 페이지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그곳에 접속하시면 애플 제품들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네, 지금 링크 주신 곳에 들어가 봤는데요. 재활용 수거를 선택할 수 있는 디바이스 타입에 에어팟 항목이 따로 있지는 않네요. 어떤 걸 선택하면 될까요?

-죄송하지만, 저희도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담당 업무를 진행하는 협력업체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 그곳에 직접 연락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안내해준 협력업체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애플 제품을 수거해서 재활용하신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에어팟도 수거 가능한가요?

-네, 에어팟은 보상판매 대상이 아닙니다.

-아니요, 보상판매는 괜찮고요. 다 쓴 에어팟을 그냥 버리기는 뭐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면 보내고 싶거든요. 에어팟도 혹시 재활용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네, 에어팟은 재활용이 안됩니다. 받고 있지 않아요.


아, 혈압이 급격하게 오르는 걸 느꼈지만 진정하고 머리를 굴렸다.

아니 그래도, 설마 우리나라만 그런 거겠지. 구글링을 해보자.

What really happens to airpods when they die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적어놓은 기사가 곧바로 나왔다. 2019년 5월에 작성된 이 글에 따르면 애플의 공식적인 의견은 이렇다. 애플 홈페이지에서 미국 내 재활용 업체로 택배를 보낼 수 있는 선불 배송 송장을 주문할 수 있으며, 이 송장을 붙여 에어팟을 재활용 업체로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혹은 사용한 에어팟을 애플 스토어에 가져오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애플이 에어팟을 수거 가능한 제품 목록에 등록한 것은 2019년부터였고, 계약 중인 재활용 업체들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을 꺼렸으며, 자세한 재활용 프로세스에 대해서 공개하는 것도 거부했다. 애플과 계약된 재활용 업체에 따르면 에어팟의 구조상 자원을 추출하여 재활용을 하는데 드는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너무 크다고 한다. 재활용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인 격이다. 가장 핵심적인 지적은, 애플이 에어팟의 가볍고 미니멀한 기능적이고 미학적인 부분만 강조하고 재활용은 뒷전으로 미룬 채 제품을 설계하다 보니 타고나길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가장 환경파괴적인 제품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반적인 공구로 가정에서도 쉽게 열고 분해 할 수 있으며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삼성의 Galaxy Buds를 예로 들고 있다. 이 말인즉슨, 기업이 의지만 있다면 오래간 사용할 수 있고 자원도 쉽게 수거 가능한 블루투스 이어폰을 출시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표면적으로 애플은 에어팟 수거와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홍보도 하지 않고 절차도 가린 채 얼버무리고 있으니 재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그것도 미국에 한정해서). 보상판매 규정도 없어 구매자들이 관심을 가질 리도 없다. 의도적이라고 의심해도 좋을까? 근본적으로 제품 기획부터 재활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동안 억 소리 나게 판매하면서도 다 쓴 에어팟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계획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키노트에서 보여준 초록색 포장과는 달리 애플이란 기업이 환경을 대하는 실질적인 태도가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작 수명이 2년밖에 되지 않게끔 분해 불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해마다 신제품으로 유혹하면서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 진심에 가까운 것이다. 그토록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면서, 시장을 창출하여 세상에 없던 물건들을 선보였으면 그 제품들이 마지막에 적절하게 퇴장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임도 당신들이 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어댑터와 유선 이어폰을 빼서 친환경에 앞장서고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드시겠다고요?(=여러분, 그리고 이제 유선 이어폰을 주지 않으니 에어팟을 사면 되어요!) 아, 제발 좀 하나만 하시지 그러세요. 이쯤 되면 나는 제2차 혈압 상승의 쓰나미와 더불어 기침소리에 분노하던 궁예의 모습에 빙의되고 마는 것이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친환경 소리를 내었어?...... 누가 친환경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아아!’



나도 애플 제품들을 사용 중이고, 에어팟이 가끔 갖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동이 잦고 통화가 많은 직업이라면 모를까, 버스를 잠깐 타는 출퇴근 시간에는 유선 이어폰을 써도 충분하니까 굳이 블루투스 이어폰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아마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에어팟을 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소비자에게 탓을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물건을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책임을 지게 만드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제품을 구상할 때부터 끝에는 어떻게 폐기하고 자원을 수거하여 재활용할지에 관한 계획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들을 판매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가 아니라 지구에서 인간이 계속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끝없이 쏟아지는 물건들의 홍수를 우리가 사는 곳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다.

비단 애플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을 위한다는 돈벌이들 대부분이 욕심에 물들어 근본적인 반성 없이 친환경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꼼수를 부린다. 돈을 벌고 쓰는 모든 행위는 환경을 발판으로 삼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자본과 친환경이라는 말은 양립할 수 없다. 친환경이라고 홍보하는 속뜻은 조금 덜 환경파괴적이라는 뜻이지 정말로 자연과 친親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에코 프렌들리라니, 감히 어디서 친한 척이야? 그간 수없이 저질러온 악행이 있는데, 에코가 들으면 칼 들고 쫓아올까 무섭지도 않나 보다. 그나마 세상을 덜 망가뜨리는 선택을 하자는 제안도 기업과 정부의 탐욕스러운 기만에 의해 얼룩지는 게 현실이니,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심기를 거스르는 친환경 소리는 이제 더 듣고 싶지 않다. 마음만 같아서는 정말 궁예처럼 때려 죽...... 아, 아니다.


화를 가라앉히고, 애플에 에어팟 문제와 그린 와싱에 항의하는 메일을 보냈다. 당장 변할 리 없겠지만 두드려는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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