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일단 거짓말을 한 것에 사과를 올리고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아직 마흔이 아닙니다. 마흔이라고 하는 게 더 주목을 끌까 싶어 마흔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내후년이면 마흔이 되기도 하고,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이렇게 쓰겠습니다. 나이를 적게 속인 것도 아니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쓸 글은 말 그대로 나이 마흔에 진로 고민(커리어보다 좀 더 넓은 의미의 단어를 쓰고 싶었습니다)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 같은 책을 읽으면서 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책 찾아봐라.’ 어렸을 때 들은 이 말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아온 사람이거든요. 챗GPT가 나온 요즘 같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연애도 책으로 배운 사람인 걸요.
그래서 제가 진로 고민을 하면서 읽은 여러 책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단, 이 글은 ‘이 책 읽고 진로 고민 해결했다!’는 글이 아닙니다. 그런 글을 기대하신 분이 계시다면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커리어를 쌓고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도통 이게 내 일인 것 같지가 않아 괴로우신 분들, 나답게 살고 싶지만 나답게 사는 게 뭐지? 싶으신 분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취직하면 행복하대서 그렇게 했는데 결과는 안 그래서 괜히 억울하신 분들, 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도 다음날엔 퇴사한 사람의 책을 들춰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너무 많았나요? 제가 저렇거든요… ) 어딘가에 저와 같은 분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방구석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때로는 '맞아, 여기 나 같은 사람 또 있네.' 하며 큭큭 웃어주셨으면 (그래서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셨으면), 또는 '나는 그래도 낫네.' 하는 위로를 얻으셨으면 하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입니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를 먼저 소개해야겠네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다섯 살 땐, 매일 밤 자기 전 책 스무 권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여 엄마 목을 쉬게 만들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사겠다고 서점에 갔다가 서점 아저씨에게 ‘넌 아직 너무 어린것 같은데’라는 말을 듣고 단념하고 돌아왔으며, 지금도 선명한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풍경은, 매미 소리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방 안에서, 수박을 먹으며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에 푹 빠져있던 오후입니다.
그러던 저는, 지금 일본에서 영업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어찌하다 일본의 대기업에 취직했고, 또 어찌어찌하여 IT 시스템 영업직으로 배속을 받았으며,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연년생의 두 아이 덕에 3년의 육아휴직도 받습니다) 한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일본에 있는 미국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커리어라면 커리어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이 커리어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을 해봐도 제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너무 큰 신발을 신었을 때처럼, 벗겨지지 않게 늘 발가락에 힘 꽉 주고 걸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남들에겐 그럭저럭 괜찮은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직장에서 얻는 수입 덕분에 가족들과의 소중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늘 불안했습니다. 내겐 너무 큰 신발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속에 들은 거라곤 공기밖에 없는 풍선 같은 제 커리어가 터지지는 않을까, 바람 빠져 쪼그라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티핑 포인트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찾아왔어요. 아마도 서서히겠지요. '이건 뭔가 아니지 않나?'에서 '이렇게 사는 방법뿐이 없는 걸까?', '이러다 병나겠는 걸?', '이렇게는 안 되겠는데'로 생각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예, 모르는 건 책에서 찾습니다.
책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찾고 싶어서요. 진로에 대한 책만 읽었던 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책을 읽다가도, 경제적 자유가 생기면 이런 고민도 안 할 듯싶어 파이어족에 대한 책을 보다가, 아니 애초에 필요한 돈이 적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또 다른 수입원을 위해 퍼스널 브랜딩 책을 들춰보다가, 애초에 내가 왜 이렇게 됐나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책을 보기도 하고(예, 남탓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멋있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하고 동경하는 사람의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예, 뒤죽박죽입니다. 탱탱볼을 바닥에 던졌을 때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튑니다.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실천의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합시다), 덕분에 여러 가지 책을 소개해 드릴 수 있으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거라 자기 최면을 걸어봅니다. 여러분께서는 20대 때 해야 할 고민을 마흔 가까운 나이에 하고 있네 하고, 혀를 쯧쯧 차며 봐주셔도 되고, 20대 분들은 저를 반면교사로 삼으셔도 되겠습니다.
아, 시작하기 전에 주의사항입니다 (별 것도 아닌 글에 주의사항이라니, 좀 거창하네요). 제 글에는 일본책이 많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 이유는 그저 제가 일본에 살고 있어서 일본 책을 접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이 책 한 번 봐 볼까?' 하는 분이 계실까 봐(김칫국부터 마시는 스타일입니다), 되도록 한국에 번역본이 나와있는 책을 골랐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첫 책은, 모리오카 츠요시의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서 고민하는 너에게 - 선택의 기로에 선 딸에게 알려주는 커리어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