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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Aug 28. 2016

당신은 펠레를 얼마나 아는가?

펠레: 전설의 탄생 (2016) | 스포츠, 드라마 | 107분


비행기에서 펠레를 만나다


평소 아무리 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비행기를 타면, 좌석 앞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영화 한두 편쯤 재생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하릴없이 영화를 보곤 한다. 나름대로 일정한 기준을 갖고 기내 영화를 고르는 편인데, 한국어 자막이나 더빙이 제공되지 않을 때는 대개 애니메이션 혹은 코미디(시사성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냥 평범한 코미디)를 선택한다. 서른 이후로 영어 청취능력에 심각한 저하가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코미디 중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땐 무조건 스포츠 영화를 찾는다.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언어에 특별한 강점이 없는 사람이라도 대충은 영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남아공에서 홍콩을 거쳐 인천에 다다른 아프리칸이 비행기 안에서 <소림축구><국가대표>를 봤다고 해도 큰 어려움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천에서 호주를 거쳐 칠레에 도착한 한국인이 기내에서 <허리케인 카터><불의 전차>를 봤다고 해도 감동이 없지는 않을 거고.


20대 초반의 펠레


나는 얼마 전 비행기에서 펠레를 만났다. 


물론 펠레와 직접 대면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억만장자인 그가 에어프랑스 이코노미를 타지는 않을 테니. 그저 펠레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본 것뿐이지만, '만났다'는 표현을 써도 괜찮겠다 싶은 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펠레'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진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뜻도 모르는 이름과 몇몇 업적만으로 알고 있던 축구선수 펠레의 위대함을, 그리고 그의 성장과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으니 '펠레를 만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속 어린 펠레의 모습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축구영화 '펠레'


영화 <펠레: 전설의 탄생>은 대단히 평이한 구성과 흐름을 가진 작품이다. 얼핏 제목과 포스터만 봤을 땐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만든 스포츠 드라마였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촬영됐지만,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인지라 대사의 99% 이상은 영어로 소화된다. 가끔 브라질 국어인 포르투갈어가 몇 개쯤 원어 그대로 쓰이긴 하나, 어쨌든 대부분의 대사는 영어다.


그래서일까? 보다보면 뭔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은 재연 프로그램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대충대충 찍은 느낌은 아니다.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건 그런대로 볼 만한 영화라는 거다.


당신이 축구팬이라면 이 평범해 보이는 영화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질 것이다.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내에 축구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펠레의 일대기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하기에 단조로운 구성과 평이한 연출, 지나치게 스피디한 전개에 굳이 태클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simple', 'easy', 'speedy' 모두 영화의 미덕일 수도 있으니까. (동시에 좋은 축구를 이루는 요소일 수도?!)


영화 속, 월드컵 우승 후의 펠레


어쨌든 다소 뻔한 구성의 영화지만, 펠레를 다루는 여느 두꺼운 자서전 만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루하게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조금 기대를 내려놓으면 이 작품 나름의 장점이 보인다. 즉, 펠레라는 사람에 대해 알기에도, 그저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기에도 괜찮은 스포츠 무비라는 점이다.


우선 축구 장면을 대단히 잘 찍었다. 영화적인 특성(혹은 한계)으로 인해 실제 TV 중계화면 같은 모습을 담아낼 수는 없겠으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그 어떤 축구영화보다도 촬영을 잘 했다. 카메라워크가 축구 경기 모습을 매우 잘 포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필드 위에서 선수 역할을 해낸 배우들의 플레이가 훌륭했다. 다들 볼 좀 차본 배우들이라는 느낌이 확 전해졌다. 물론 과장 섞인 몸동작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록키>처럼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풀 파워로 카운터 펀치를 날려대는 식의 넌센스는 찾아볼 수 없다. 


가끔 주인공 펠레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드리블, 슛, 테크닉이 순간순간 '좀 심하다' 여겨질지 모르나, 그 역시 1958년 월드컵에서 펠레가 18살의 나이로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안겨줬던 충격적인 실제에 비하면 그리 과장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극적인 임팩트를 위해 약간의 효과를 덧붙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브라질리안 국뽕' 느낌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잦아지긴 하지만, 그 역시 실제로 있었던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니 크게 트집 잡을 수는 없다.


실제로 1958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홈팀 스웨덴을 5대 2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웨덴의 우승을 점쳤으니 그런 분위기로 영화가 흘러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 펠레와 동료 선수들이 보여주는 나이키 광고스런 호텔 축구 씬은 진지하게 흘러가던 영화의 매력을 깎아먹은 느낌이다. 이 장면에서 진짜 펠레가 카메오로 등장한 것을 볼 때, 가벼운 미소가 지어지는 유쾌한 장면으로 연출하고픈 의도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조금은 아쉽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진지한 분위기의 팩션(Faction)이었기에 일관된 톤을 지속해나갔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펠레의 라이벌이자 악역으로 그려지는 공격수 조세 '마졸라' 알파티니



펠레는 '펠레'를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자주 접하기 어려운 축구 영화, 그럼에도 무려 2016년에 만들어진 최신작!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레전드를 다룬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축구팬들에게 선수로서의 펠레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본질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다. 큰 대회를 앞두고 허튼소리나 해대는 꼰대 정도로 그를 평가절하했던 축구팬들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펠레의 위대함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SPECT


참. '펠레'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정확히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는 펠레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 이 영화 속에서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펠레는 어린 시절, 바스코 다 가마 팀의 골키퍼 빌레를 좋아했는데 그 선수의 이름을 펠레로 잘못 알고 자신의 별명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난한 펠레가 맨발로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짓궂은 녀석들이 놀리듯 '펠레'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펠레(pele)는 포르투갈어로 '피부', '맨살' 등을 뜻하고, 꼬마 펠레가 동네 친구들과 만든 축구팀 이름이 '신발 없는 아이들'이었다는 것에서도 호칭에 대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펠레 자신이 어린 시절 '펠레'라고 불리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얘기한 바 있어 그 별명이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맨발의 아이'라는 놀림 섞인 호칭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펠레의 통산 1,000골을 기념하는 브라질 우표


어린 시절 매우 가난했던 펠레는 장남으로서 아버지가 청소부로 일하는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사실 펠레의 아버지도 명문구단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활약한 적이 있을 정도로 꽤 주목받는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어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하는 동시에 아들 펠레에게 축구를 가르쳤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이러한 일화들이 간략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스웨덴 월드컵 우승 후 동료 선수들, 팬, 기자들에 에워싸여 즐거워하는 펠레의 모습으로 끝나는데, 엔딩 크레딧과 함께 펠레가 세운 수많은 기록과 현역 선수 시절의 흑백 영상이 차례로 이어진다. 펠레는 월드컵 우승을 3회나 달성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선수이며, 프로 통산 1,200골 이상을 득점한 선수다. 또한 해트트릭을 90회 이상 기록했으며, IFFHS(국제 축구 역사 및 통계 연맹)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20세기 최고의 남미축구선수다.


무수히 많은 기록을 가진 펠레지만, 크지 않은 신장(173cm) 탓에 헤딩 득점에 일가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거의 모든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이지만, 헤딩골에 대한 기록 만큼은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참고로 브라질 축구 역사상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헤딩골을 기록한 선수는 5골을 넣은 돈지뉴다. 돈지뉴가 누구냐고? 앞서 얘기한 펠레의 아버지다. 그는 축구 황제 펠레의 멘토이자 트레이너, 친구 그리고 가장 강력한 서포터였다. 


우루과이 축구박물관에서 찍은 펠레의 실착 유니폼


어쨌든 그렇게 대단했던 펠레가 왜 브라질에서만 선수생활을 지속한 것일까? 요즘 축구팬이라면 의문을 가질 만한 부분이다. 열여덟 나이에 월드컵을 들어 올렸던 선수가 왜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혹은 바이에른 뮌헨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니면 AC 밀란이나 유벤투스 같은 팀에서 뛰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법도 하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 역시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펠레는 1961년 브라질 정부에 의해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보는 나라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국보 중 하나인 펠레 역시 바다 건너 유럽으로 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 공식 예고편



글 - 김다니엘 ('하루쯤 축구여행' 저자)

사진 - 영화 스틸컷, 포스터, 위키피디아, 김다니엘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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