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_37
2019년 4월 3일에 쓴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민방위 가는 길.
버스 정류장 근처에 한 남자아이가 장난감 총을 들고 오고 있었는데
으레 남자애들한테 총을 쥐어주면 그걸로 신나게 마련인지라
여기저기 빵! 빵!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음.
할머니도 그만하라는 말이 지겨운지 별 말 안 하는 눈치였음.
허공에 빵빵하거나 가끔 사람한테 쏴도 총알이 나가는 게 아니니
사람들은 그냥 본둥만둥하면서 지나가고 있었음.
그러다가 한 아주머니가 아이가 빵! 할 때 으악! 하고 리액션을 해주심.
그동안 여기저기 난사를 하던 아이는 리액션에 신이 났는지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기 시작함.
그러면서 총을 들고 나를 조준하다가 나랑 눈이 마주침.
이 녀석은 무슨 사냥꾼처럼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눈이 마주치니 좀 머쓱했는지 눈치를 보면서 쏠까 말까 하는 눈치였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그게 약간 이 아이한테 도발로 인식됐나 봄.
갑자기 겁나 진지한 표정으로 빵! 하고 총을 쐈음.
저렇게 진지하게 총 쏘는데 그냥 지나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악! 하고 맞아줌.
근데 이 아이가 계속 몇 발을 더 쏘기 시작함...
순간 고민을 좀 하긴 했는데... 버스도 안 오고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악! 악! 하고 더 맞아줌.
문제는 이 아이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는 거임.
옛날부터 애랑 개랑은 진짜 금방 친해지는 것 같음.
남자라면 울고 본다는 친구네 아들 녀석도 나한테는 바로 안기던데 정신연령이 만만한가.
무튼 더 지체하기 민망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표정에서도 귀찮음을 느낀지라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싶었음.
겉옷 속주머니에서 큰 총 꺼내는 척을 해서 두두두두 하고 쏴줬음.
단발 권총만 보다가 연발총을 보면 놀란 건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를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탔음.
이 글 쓰다 보니 민방위 훈련장 앞이네. 덕분에 지루한 길 조금 덜 지루하게 온 듯.
아... 싫어 여길 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