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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lda Dec 10. 2021

미안해하지 않는 삶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아.

  

47개월 8개월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인 나는 매일 쫓기는 마음으로 산다.     


아침 6시면 알람 시계마냥 일어나는 두 아이를 먹이고 입혀서 등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길, 정작 나는 세수만 하고 뛰쳐나와 회사로 간다. 정신없이 전화를 받고 업무를 하다 보면 5시. 호다닥 퇴근을 하고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꼴찌는 정말 싫다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나는 듯 뛰어간 어린이집에서 조잘거리는 첫째를 유모차에 앉히고 바둥거리는 둘째는 아기띠에 매달아 집으로 간다. 기진맥진 도착한 집에서 졸려하는 둘째가 울새라 얼른 두 아이를 씻기고 둘째를 재우고 나오면 참새 같은 첫째가 배고파 배고파 짹짹거리며 있다. 

  

야근이 많은 남편이 오려면 아직 하세월이 남았고…. 잽싸게 저녁을 차려내 먹이고 먹다 보면 내 밥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저녁 8시. 하나도 못 놀았다는 첫째를 달래 양치시켜 재우고 나오면 아침 6시부터 시작한 나의 하루가 밤 10시가 되어 겨우 끝나간다.


이토록 정신없는 하루가 끝나고 가만히 자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밀려오는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질 때, 나는 엄마의 말을 되뇐다.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떠오른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가부장적인 훈육에서 자란 나는 ‘부정’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아빠는 “부모 말이면 틀린 말이라도 일단 “네”라고 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왜?” 라던가 "아니요"라는 말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엄마는 강경한 아빠를 꺾기보다는 일단 맞춰주는 쪽을 택했다. 타고난 성격이 유순했던 나는 나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맞추고 의문이 있어도 일단 "네"라고 대답하는 '착한' 스무 살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20대는 거절하지 못해 끙끙 앓고 화를 내야 할 때 웃음으로 무마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다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저 웃으며 조율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상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내 상처를 주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우연히 갖게 된 상담의 시간을 통해 희로애락 모두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해 후반에 이르러 겨우 부정의 감정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중이다.     


어느 날 엄마와 빨래를 개다 문득 이런 나의 아쉬운 마음을 꺼냈다.     


“엄마. 난 부정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했던 거 알아?      

그래서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한테 좋은 사람이 아녔었어. 그걸 인정하고 연습하는 걸 성인이 돼서 배우느라 힘들었어. 내 어린 시절에 아빠가 조금만 덜 무서웠더라면, 엄마가 무조건 아빠부터 맞춰주라고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원망하는 건 아니야.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너희 어릴 땐 그걸 몰랐어. 

젊은 날 아빠는 성격이 불같았고 일은 너무 바빴고 나는 혼자 너희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 나는 그럴 거야.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그때 최선을 다해 너희를 키웠어. 

몰라서 못 해준 건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나는 후회가 없다.

그래서 너희가 서운하다 느꼈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너희에게 미안하지 않아."     


무겁게 꺼낸 나의 말을 가볍게 받아치는 엄마의 말이 엄마 손에 들린 마른행주처럼 산뜻했다. 

아, 민트보다 쿨한 우리 남춘 여사. 

최선을 다했기에 미안하지 않다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가 나는 정말이지 좋았다.     


그 뒤로 문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시려올 때면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너에게 미안하지 않아.’

비록 이 말을 되뇌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이지만 미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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