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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lda Dec 30. 2021

남춘여사 30년 이론



'아 지겨워. 다 버리고 혼자 있고 싶다.'


아이 둘이 엉엉 우는 밤 11시였다.


첫째는 막 세돌이 넘었고 둘째는 고작 50일, 신랑은 오늘도 야근.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알 것이다. 50일 된 아가가 얼마나 자주 깨는지.

겨우 재웠더니 그새 깨서 우는 둘째를 달래러 가자 잠이 들랑 말랑 했던 첫째가 매달려서 엄마 가지 말라며 울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를 두 번 한 몸은 아직 비명을 지르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아기띠만 넣으면 자지러지는 둘째를 왼팔로 안고 엄마를 뺏긴 게 슬픈 첫째를 오른팔로 안고 달랜 지 30분, 40분, 50분... 번갈아가며 울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두 아이를 더 이상 안을 힘이 없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둘이 울기 시작하는데 삐----- 이명이 들리며 대상 없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엉엉 우는 두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아 지겨워. 다 버리고 혼자 있고 싶다.'


엉엉 우는 저 소리가 안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몸을 맡기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야근으로 이 시간까지 없는 신랑에게 화가 치솟았다.

그만 울라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내가 왜 애를 둘이나 낳아서 이러고 사나 내가 미친년이지, 나도 미웠다.


새햐얗게 미쳐 돌아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 어찌어찌 아이 둘을 겨우 재우니 밤 12시.

띠띠띠띠띠 또로로. 대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오는 신랑이 미워 견딜 수 없어 얼굴도 보지 않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몇 번을 깼는지 기억도 안나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비척비척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몸은 어떻냐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어젯밤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 그래서 몸도 힘들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마음도 힘들다.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아이구 그래 네가 애쓴다며 나를 위로한 나의 남춘 여사가 명언을 남겼다.


"내가 살아보니

30년은 부모랑 살고 30년은 자식이랑 살고 또 30년은 신랑이랑 사는 것 같다.

부모 떠나 살기 시작하면 다시 부모랑 살기 어렵듯, 자식이 나 떠나면 다시 같이 살기 힘들더라.

품 안의 자식이라고, 정신없이 힘들어도 30년을 기쁘게 살아."


눈물이 핑 돌며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 긴 인생 중에 내 품에 함께 하는 건 고작 30년. 그중에서 엄마 엄마 찾는 이 짧은 시간.

상황에 치여 잊었던 소중한 것이 남춘 여사의 말에 다시 내게 돌아왔다.


이제 둘째가 9개월이 되었다.

여전히 육아는 고되고 화가 치솟는 순간들이 있지만 30년을 생각하며 (조금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의 지평과 깊이를 더해준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 둘과 행복을 꽉꽉 채워야지!

나에게는 아이와의 30년, 아이에게는 엄마와의 30년.

사랑으로 가득한 시간을 만들어야지!


비록 지금의 다짐을 잊고 또 화가 불끈 나겠지만 괜찮아. 또 다짐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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