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라킨스의 책《파이어족이 온다》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당신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일에는 돈을 쓰지 말 것.
이걸 읽고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또한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돈은 얼마가 드는 것인지도. 그래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을 찾을 때마다 기록해 보기로 했다.
1. 플르부아 히노끼 레더 핸드크림
내 생일날 세심하고도 친절한 친구가 이 핸드크림을 선물해줬다. 아이를 낳고 나서 손 씻을 일이 극도로 많아진 나는 손에 핸드크림을 거의 바르지 않았다. 핸드크림을 발라도 조금 뒤면 손을 싹싹 씻어야 했으니까. 물과 비누에 금세 씻겨 내려가는 핸드크림이 왠지 아까웠달까.
친구의 선물을 받고 이 30ml 의 작은 핸드크림이 내게 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내 시간을 갖기 전, 나는 의식처럼 이 핸드크림을 손에 바른다. 핸드크림을 바르면서 '이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야.' 라고 되뇌인다. 잠들기까지 더 이상 손 씻을 일은 없다는 듯, 골고루 손에 바르고 촉촉함과 향기를 누린다.
이 핸드크림은 신기하게도 정말 히노끼 향이 난다. 바르고 나면 김이 가득한 사우나 안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편백나무로 만든 노천 히노끼 탕에 오소소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샤워라는 개념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온가족이 공중 목욕탕에 갔다.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김이 가득한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도망치듯 나오고, 까슬까슬한 목욕탕 돌 바닥을 만지며 놀다가 뽀득뽀득 때를 밀리고 나오곤 했다.
이 핸드크림을 바르고 향을 맡으면 그때의 추억 속에 있는 것만 같다. 따뜻하고도 정겨웠던,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와 물 소리, 엄마의 잔소리와 외침이 있던, 괜시리 편안했던 그 공간. 왠지 지금은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은 그 공간의 느낌이 되살아나며 나는 괜히 행복해진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이 물건, 사는 데 돈이 얼마가 들까?
히노끼 레더 핸드크림 30ml 에 12,800원. 제주 추가배송비 6,000원. 한번 사는 데 18,800원이 든다. 나는 한 통을 다 쓰는데 3개월은 걸리는 것 같다. 그럼 1년에 18,800원 × 4 = 75,200원.
어릴 적 목욕탕에서의 추억과, 혼자만의 시간을 확인해주는 행복에 1년 동안 드는 돈은 7만 5200원이다.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1년에 이만큼, 한 달에 6,300원은 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