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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a Nov 04. 2017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아가는 법, 천공의 성 라퓨타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어렸을 적에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면 나를 뒤에 태우고 바다를 낀채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셨다. 할아버지 뒤에 타면 바닷 바람에 수줍으면서도 꼭 붙어 있었다. 해질녘은 바닷 비린내도 나고 시원한 맛이 그만이어서 웃음이 났었다. 여기 이런 잊혀지는 정다운 것들을 놓지 않는 <천공의 성 라뷰타>가 있다.

 


시타와 파즈는 씩씩한 고아들인데, 눈물도 흘리고 다치고 쫓겨 도망다니지만 잠시라도 고개를 누이거나 웃음보가 터지면 금새 깔깔거린다. 이들이 깔깔 웃는 모습은 마음이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금세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바보 같았던 웃음을 잃어버린 어른은 마음이 아릴 것이다. 짐작컨대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른들을 위해서 어린 아이가 나오는 이 영화를 만들었으리라. 그는 잊지 않은, 아니 잊지 못한 아름다운 것이 아주 많은 어른이어서 영화를 만드는게 아닐까.






시타는 어머니가 주신 가보, 비행석이라 불리는 목걸이 때문에 군대와 해적들에게 위협받고 쫓김을 당한다. 그리고 납치된 공중 비행선에서 추락하지만 신비한 힘을 가진 비행석 때문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 이 때 시타가 정신을 잃은채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파즈가 발견하게 된다. 어린 파즈는 다른 일행과 달리 비행석을 빼앗으려 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시타를 자신의 집에서 쉬게 하고 친구가 된다. 그리고 시타를 도우며 함께 도망친다.


소년이 장난스레 비행석을 시험해보겠다는듯 목에 걸고 뛰어내려서 우당탕 사고를 치는 모습은 바보같지만 탐욕 뿐인 어른들에게 쫓겨다니던 시타에게는 웃음과 안도를 주는 일이었다. 그 모습은 아주 대조적인 것이어서 문득 부끄러워진다.


"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하고 말야 "

" 아냐. 네가 왔을 때 가슴이 뛰면서 멋진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 "






두사람의 교집합은 바로 라퓨타, 라퓨타는 하늘에 떠다니는 미지의 섬으로 파즈의 아버지는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었지만 사기꾼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파즈는 아버지를 보며 언젠가 라퓨타를 찾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지고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또 후에 나오는 시타의 이야기는 라퓨타와는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두 사람과 군대, 해적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라퓨타를 찾아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터무니 없어 보이지 않는건 아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금새 고마워하고 영원한 적으로 남지 않으며 내내 사랑스럽다.



돌들이 수군거릴 때 동굴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보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두운 동굴에서 해적을 피해 들어와 있던 두 아이를 본 보무 할아버지는 "요정이다, 요정이 있군." 이라며 중얼거린다. 보무 할아버지를 알고 있었던 파즈가 반가움에 말을 걸자 그는 "파즈를 닮은 요정이군." 라고 말한다. (ㅋㅋㅋㅋㅋ)








" 꼬마 아가씨.. 그 돌엔 강한 힘이 있어. 평생 돌들과 살았으니 잘 알지. 힘을 가진 돌은 행운을 주지만 때론 불행을 주기도 한단다. 게다가 그 돌은 사람이 만든거다. 걱정이 되는구나. "


세상과 동떨어진 보무 할아버지를 만난건 아주 어두운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상보다 더 밝은 상냥함을 준다.(할아버지는 의도한게 아닌 것 같지만..) 시타는 보무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고맙다고 말하며 포옹한다. 이 포옹을 보면서 누군가 안아주는 용기를 더 내고 싶어진다.







시타와 파즈가 라퓨타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몇번이고 뭉클하는 일이 생긴다.

계란 후라이 하나로 들꽃 한송이로 잠자리 모양을 한 작은 비행선의 움직임 하나로도 즐거움을 주는 것은 미야자키식 말하기일 것이다. 그 구간을 찾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여러 재미 중 하나다.

1980년대 작품인 것이 무색하게 촌스럽지 않은 무언가, 요즘 감성을 갬성이라 부르며 감성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이 헛헛하지 않은 생기를 줄거라 생각한다.





납치와 쫓김이 먼 이야기같아도 간혹 시간과 어둠에 쫓기는 나도 두 고아의 도움을 받는다.

일상이 전쟁같지만 몇번은 퇴근 후에 자바칩 프라프치노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사랑하는 이들과 오늘에 만족하며 호탕하게 웃다가, 무거운 짐든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여유 시간을 내어 기도하다가 감사를 돌린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니까.











천공의 성 라퓨타 (Laputa: Castle In The Sky, 1986) /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판타지, 모험 / 2004 .04.30 개봉 / 124분 / 일본 / 전체 관람가

출연 - 타나카 마유미, 요코자와 케이코, 하츠이 코토에, 테라다 미노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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