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마인
곧 엔젤라의 집에서 쫓겨날 신세가 된 나는 엔젤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비용을 지불하겠으니 2주간의 시간을 더 달라 말하였다. 엔젤라에게서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자를 받아 한시름 놓았으니 나는 이제 다시 집 구하는 일에 열중했다. 할렘가는 두 번 다신 가기 싫었고 플랫 메이트가 한국인이라고 적혀있으면 걸렀으며 남녀가 함께 지내는 조건도 피했다. 그렇게 추려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고는 뷰잉(viewing) 신청을 했다. 렌트비는 조금 비싼 감이 있었지만 위치도 괜찮았고 플랫 메이트들의 미소도 맘에 들었다. 나는 최대한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어필을 했고 반응도 괜찮았기에 여유로운 맘으로 긍정의 답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온 답장,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너보다 훨씬 사정이 급한 친구가 들어오게 됐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난관에 부딪쳤다.
눈 비비며 일어나 어김없이 정원의 꽃나무들을 가꾸고 있는 엔젤라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Good morning Lucy, D'you have a good sleep?" 하고 물었다. 그리곤 나에게 다가와 홈 스테잉을 연장시켜 주겠다고 말하였다. 종종 이런 제안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그럴 수 있도록 허락해주진 않아, 너는 깨끗하고 좋은 애니까 내가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야하고 덧붙였다. 그녀는 종종 내가 오기 전에 머물렀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Ryan이라는 친구는 원래 영어를 잘 못 했는데 집을 떠날 때쯤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요즘에도 종종 연락이 와 가끔은 저녁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사실 자세히 들어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덕택임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었다.
[저 대신 들어오실 분 구합니다]
한국인 남자가 써 올린 글이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본인을 대신해 들어올 사람을 구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난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기에 반 자동적으로 글을 클릭했다. 위치는 라스마인(더블린에서 치안 좋고 살기 좋기로 유명한 곳), 플렛 메이트들은 모두 외국인 여자였으며 모두가 천사 같은 성격이라고 적혀있었으며 렌트비도 비교적 저렴했다.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들어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고 나는 바로 그다음 날로 뷰잉 날짜를 얻어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내 눈에는 대로를 끼고 마주 보고 있는 대형 마트들과 우리나라의 다이소 개념인 유로 자이언트, 맥도널드, 영화관, 화장품 가게, 정육점, 한인마트, 펍 등이 자리 잡은 작은 시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골목 사이사이로 들어가니 잔디가 깔린 프라이빗 운동장을 중심으로 네모난 모양으로 둘러져있는 주택가가 나왔다. 3분 정도 걸어 그중 가장 먼 모서리에 위치한 파란 대문의 집 앞에 섰다.
노크를 하자 한국인 남자 한 사람이 나와 정면의 계단 몇 칸 아래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오른쪽에 세탁실로 보이는 곳을 지나 보이는 문을 열자 꽤나 아늑해 보이는 소파와 테이블이 위치한 거실이 나왔고 그곳엔 문이 두 개 있었다. 왼쪽의 하나는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주방으로 연결된 문이었다. 거실을 지나 아이보리색을 띤 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가니 원형의 나무 식탁이 놓여 있었고, 싱크대와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안경을 쓴 여자애가 노트북을 테이블에 두고 앉아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니 벌떡 일어나 내 양 볼에 키스를 했다. 브라질식 인사법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려 일부러 과하게 웃어서 작아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갑다고 말하였다. 주방을 지나쳐 하나의 문을 더 여니 복도가 나왔다. 왼쪽 첫 번째 문은 화장실이었고, 그다음의 문은 자리가 비게 될 작은 방, 복도의 끝엔 그 방보다 조금 더 큰 방이 있었다. 각 각의 방에는 침대 두 개가 들어있었다. 총 네 명이 셰어 하는 집이었다. 방금 인사를 한 스테파니를 제외한 두 명 또한 집을 곧 떠날 예정이라 결국 새로 들어오게 될 플랫 메이트의 결정권은 스테파니에게 있다고 그가 말하였다.
집 계약과 플랫 메이트들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는 그 집을 나와 잠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집에선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좋은 향이 났다. 방금 만난 여자애와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잠깐 하고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 침대에 걸터앉으니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스테파니가 당신이 마음에 든대요, 입주해도 좋아요. 다른 뷰잉 일정은 모두 취소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