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색을 깔고 그 위에 검은색, 빨간색, 흰색... 여러 두께로 교차된 선들을 손으로 따라그려 본다.
패턴이란 게 그럴 수밖에 없지만 체크무늬는 묘하게 눈에 띄고 또 무난하다. 가로 세로로 채워지는 단순함 때문일까 여러 색을 써도 눈이 편안하다. 인테리어로 쓰면 아늑하고 몸에 두르면 편안하다.
끊임없이 교차하는 선이 모여 패턴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인연에 대해 떠올린다. 우울증 이후로 어느 정도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다. 예민했고 쉽게 불편함을 느꼈다. 우울증을 밝힐만큼 친했던 사이여도 마찬가지였기에 나를 둘러싼 원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혼자만 남게 되더라도 깎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아 준 사람들.
'조심'한다는 태도를 보면서 어느 정도 어떤 사람이 나와 감정의 민감도가 비슷한지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조심한답시고 '정신과 약 오래 먹으면 안 좋다는데 이제 그만 끊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고, 어떤 사람은 나의 우울증을 자신이 참아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럴 때 좀 아득해졌다. 약은 의사선생님이 알아서 할 문제고, 나의 우울증은 누군가의 참을성 테스트가 아닌데...
그리고 다행히 곁에 남아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은 나의 우울증에 대해 크게 영향받지 않으며, 이전과 이후에 딱히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그런 이유로 주눅 들 필요도 없다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교차하는 선이 아니라 나의 바탕에 스며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패턴은 어떤 모양인지 체크무늬를 보며 돌이켜본다. 그리고 나의 무늬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