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스스로에게 꾸준히 배신당한 한 해였다.
“당신의 한 해를 어떤 한 문장으로 요약하시겠습니까?”
늘 그러하듯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의 당연한 기사들 속에서 유독 생각에 잠기게 하는 한 질문을 마주쳤다. 고요한 일시정지의 상태 속에 몇 분간 뇌가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떠오른 한 단어, 배신.
우스갯소리로 오늘의 내 삶은 이미 5년 전에 계획 되어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내 머릿속에는 <인생개발 5개년 계획>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늘 수정과 확정을 반복하며 다음의 스텝을 알려준다. 언젠가 방의 물건들을 정리하다 쓰지 않던 오래 된 노트북을 발견한 적이 있다. 작동에는 이상이 없어 이것저것 만져보았는데, 과거의 내가 남겨온 사고의 궤적이 담긴 메모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중에는 향후 5년간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개략적인 계획이 담겨있었다. 앞으로 만날 세상이 어떤 모양일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세운 계획인지라 단순한 상상으로 봐도 무방했으나, 그렇게 치부하기엔 과거의 내가 너무나 정확했다. 구체적인 것은 달랐을지언정 정해진 시기와 그 때에 맞춰 해야할 일들을 마치 미션 수행하듯 하나하나 해치워왔던 것이다. 소름이 돋았지만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지금도 내 안에서는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대책본부가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다음, 다음!”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계획을 잘 세우는 나, 그리고 실천까지 하는 나’에 자부심이 있었다. 일상의 여러 전투에서 내가 이끈 작은 승리들이 가져다 주는 온전한 기쁨이 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기주도적 삶을 살고있다는 위안이자, 쉬지않는 자기비판 속에서도 나 자신을 응원할 수 있는 한톨의 객관적인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꽤나 잘 파악하고 있다는 오만이 생겨날 때 즈음, 나는 한치의 의심없이 나의 것이라 믿었던 ‘성실함’이라는 오랜 친구에게 아주 철저히 배신당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 안에 마무리 지으려던 박사 연구 계획서는 장장 두 달 반을 채우고 나서야 일단락 되었고, 아무리 바빠도 글 쓰는 것을 미루지 말자는 다짐은 무한히 ‘내일’로 밀려났다. 관심도 없던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느라 하루를 다 쓰는 것은 물론, 봤던 영화를 아무런 감상도 없이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잠들기 전까지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던 내가 하루 종일 밥 먹기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침대 위에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집안일도 대충, 방 안은 학창시절 엄마한테 혼나던 표현 그대로 돼지우리가 되어갔다. 허송세월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금요일이 분명 지났는데 눈 감았다 뜨니 또 금요일이 되어있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매일, 매주 빼곡히 채워져있던 플래너는 속이 텅텅 비어 날짜와 요일만이 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던 것도, 뜻 깊은 일에 골몰한 것도 아니었으며, 당연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도 않았다. 게으름! 그 놈의 게으름이었다.
한가로이 쉬는 시간에도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해하는 것이 한국인의 종특이라지 않나. 게으름의 달콤한 유혹에 홀려 몇 달을 보내던 중 어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여유로움이 방전된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제대로 된 휴식도 아닐뿐더러 당연히 생산적이지도 않았기에, 애매한 휴식은 곧 불쾌한 공백기로 바뀌어갔다. 게으름에도 관성이 있는지 이전의 계획머신이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내가 이렇게 살 수도 있네?’
아이패드의 굿노트 어플에는 연말정산을 위한 노트가 따로 저장되어있다.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눈이 폭폭히 쌓인 들판처럼 하얀 빈 페이지에 지난 12개월 간의 발자취를 그린다. 이번에는 유달리 이 특별한 의식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거의 매주, 매달 계획한 것을 지키지 못한 패배와 후회의 기억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엉망진창인 지난 1년의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차근차근 지난 시간들을 복기했다. 작년에 비해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기가 비교적 어려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이룬 것들이 있었다. 석사 논문을 쓰고 무사히 학위를 받았고, 글쓰기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고, 휴가 이후에 급격히 늘어나버린 체중을 6키로나 감량했다. 나름의 큰 성과라고도 부를 수 있을 법한 이 수많은 ‘완수’의 가치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그냥. 이 소소한 성공의 공통점은 모두 “그냥 해보지 뭐.”에서 시작된 것들이었다. 살을 뺀 것도 엄청난 충격을 받은 계기가 있거나 창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부터 식단 관리 좀 해야겠다.’ 하는 심드렁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평소라면 열정이라던가 의지라던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가슴 속에 탑재하고는 두 주먹 불끈 쥐며 대망의 첫 날을 기약했을 일이다. 그 모든 것들은 단 한 스푼도 첨가되지 않은 순도 100퍼센트의 무無로 시작된 다이어트는 무려 세 달간 지속되었고, 마이너스 6키로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내 생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물론 다시 복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책을 벗삼아 죽이든 밥이든 무엇이라도 만들어보리라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말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하얀 바탕에 흩뿌려 놓았더니, 어느새 서로서로 짝을 지어 열 편이 넘는 글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벌써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쓰기>폴더는 차곡차곡 배를 채워나가고 있다.
충동, 즉흥, 무모함. (계획하지 않고 하는 모든 것들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자로 잰 듯 완벽히 맞아 떨어져야 안심하는 성격의 내게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 2021년은 최악의 한 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바닥을 치고 난 반동으로 더 빠른 속도로 튀어 오르면서,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가장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 신중하게 한 발의 총을 쏘는 진종오였다면 이제는 말을 타고 황야를 가르며 따발총을 쏘아대는 영화 <놈놈놈>의 정우성이 되었달까. 과녁의 정 중앙은 아니더라도 그 넓은 품에 몇 발 정도야못 꽂아넣겠나. 이제 과녁 정중앙에 꽂힌 총알도, 점수는 상관없다는 듯 흩어진 몇 발의 총알도 내게 모두 같은 명중이자 10점이다. 몇 십년 간 계획적으로 살아온 관성이 하루아침의 변절을 허락하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깨달음은 있었다. 몇 십개의 선에 가로막혀 매번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플래너의 감옥에서 벗어나 무선 백지의 들판에서 뛰노는 자유로움을 맛보았다는 것.
꽤나 달콤한 배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