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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l 31. 2019

일간 크로스핏 : 까칠한 개인주의자.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불과 며칠까지만 해도 아침에 눈뜨면,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할 때면, 지하철에 올라 타 외부 소음을 차단할 때면, 저녁에 눈감을 때면,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갈 때면 시리고, 클로바고 불러가며 원숭이들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과 애원을 했다. 그러길 몇 개월 원숭이 한 마리가 '학교 폭력' 가해자로 밝혀졌고 내 음악 플레이 리스트에 고정돼 있던 원숭이 전곡 모음집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빈자리는 원숭이 꾀에 속아 잊고 있던 내 오랜 벗과 같은 가수들의 노래들로 다시금 채워 넣었다. 그래서 요즘 무한 반복하고 있는 곡은 '브로콜리 너마저' 신곡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다. 2분 26초 동안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노래 가사는 내가 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응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다만 망설임음 알고 있을 뿐

입 밖으로 나다니는 말들은

조금은 점잖아야 할 테니까요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죠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쳐

솔직해질 필요는 없죠 굳이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사람을 믿나요

나쁜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브로콜리 너마저 _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노래 가사와 같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닐 뿐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에도 나는 좋은 사람도,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싫어하는 친구, 멀리하고 싶은 친구, 때로는 내 이득을 위해 이용하고 싶은 친구도 있었다. 다만 망설임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 망설임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망설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원숭이 한 마리처럼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 소위 말하는 일진처럼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었지만, 최하위 포식자도 아니었기에 망설임 없이 가하는 직접적인 폭력은 못 하더라도 누군가를 향해 멸시하는 눈빛과 패륜아 같은 언어로 간접적 폭력을 가할 수 있었고 가했었다. 부끄러운 과거이며, 용서받지 못할 과거이기에 나는 잊지 않고자 한다. 어느 날 내 가해의 피해자를 마주친다면 잊지 않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자 말이다.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사과하고 용서받고자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고, 무시하며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다. 다만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기에 매번-매 순간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고, 내뱉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 분을 참지 못하고 망설임 끝에 타인을 향해 상처 주는 말을 뱉어버렸다. 지난해 11월 직장에는 새로운 동료가 왔다. 그 동료는 첫날부터 내게 다이어트에 대해 물었다. 나 역시 언제나 다이어트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직장 동료의 물음에 공감하며 내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홈트(홈트레이닝 ; 집에서 하는 운동)를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부터, 직장 동료가 사는 곳 주변에 있는 체육관과 어떤 종류의 체육관이 좋은지에 대해, 개인 PT와 그룹 PT의 비용과 장단점 그리고 차이에 대해, 내가 활용했던 식단과 이용하는 닭가슴살 사이트 등 모든 물음에 A부터 Z까지 말이다. 


내 진지함과 성의와는 다르게 직장 동료는 변화 없는 생활을 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야식 메뉴를 추천받고, 주말에 갈 맛집을 추천받으며 양껏 먹는 생활과 운동은 물론이고 걷는 것도 귀찮아하는 생활을 말이다. 그러다 가끔 내게 다시금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살찌는 모습이 괴롭다며 다이어트 조언을 구한다. 그 다시금 에 다시금 속아 주며 공감하고 처음과 같이 진지하게 모든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이러다 말겠지, 이 정도 했으면 다시는 안 물어보겠지, 진지하고 간절하면 이제 진짜 다이어트를 시작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의 태도와 생활은 언제나  변화가 없었다. 단지 같은 표정과 질문으로 내게 질문할 뿐이었다. 이제 직장 동료의 다이어트 고민은 공감할 수 없는 그저 말장난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판단이 섰고, 판단과 함께 망설임 없이 상처 주는 말을 토해냈다. 누구보다 진지하고 간절하게 다이어트를 열망해본 사람을 옆에 두었기에 그 사람의 눈물을 보았기에, 나 역시 그러하기에 공감할 수 없는 직장 동료의 말장난을 더 이상 들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 더불어 진짜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내 말에 상처 받고 정말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직장 동료님은 11월부터 변한 건 없고 오히려 살도 찌고 체형도 바뀐 것 같은데 제 생각에 직장 동료님은 정말로 다이어트할 생각도 간절함도 없거나 살 뺄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다이어트 생각도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고민 없이 먹으세요." 


평소와 다른 내 대답에 직장 동료는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는 이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이날의 이야기를 여자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그렇게 까지 행동한 속 사정은 생략하고 말이다. 그 때문에 여자 친구는 당연하게 내 행동에 대해, 내 심한 말에 대해 꾸중을 주었다. 여자 친구의 꾸중에 나는 늘 반성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날 밤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반성이나 후회의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망설임을 알기에 속에만 담아두고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는 것에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말장난 치는 직장 동료를 향해 더 심하게 몰아붙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만 생겼다.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 아니다. 망설임 없이 먼저 상처를 주는 아주 나쁜 사람만 아닐 뿐이지, 내 기분이나 마음에 상처를 주면 고스란히 돌려주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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