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에 대한 고민의 근원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불안이 원인일까? 나이를 불문하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기업문화와 급변하는 사회 구조 뿐만 아니라 AI에 일자리가 대체될 수 있다는 위협까지. 한국은 사회·문화·경제·정치 어느 측면으로든 개인이 불안을 느끼기 쉬운 구조일 것이다.
요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깊다. 오랜 방황 끝에 찾은 '기자'라는 직업이 제법 적성에 잘 맞고 제대로 경력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고민하면서 여러 자격증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 한 기사를 읽게 됐다. 13일 한국경제에 한기용 업젠 대표의 인터뷰였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7년간 1천명 가량의 한국인들과 멘토링을 진행하며 「실패는 나침반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오랜 커리어 상담으로 알게 된 한국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나이 강박
2. 시험으로 커리어를 한번에 해결하려는 경향
3. 자신의 관심사를 생각하지 않고 ‘뜨는 산업’을 찾으려는 경향
그의 조언은 '일단 뛰어들라'는 것이다. 커리어 전반기 실패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 선호를 파악하는 과정이라는 뜻이며 완벽함이 아닌 '나다움'을 추구하라는 의미였다.
퍽 감동한 나머지 SNS에 요약과 감상을 올렸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중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는데 나이강박, 시험집착, 미래 보장에 대한 요구는 높은 불안회피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따르면 "운신의 폭이 좁고 불안회피성이 강하면 많은 변수나 시행착오를 견디지 못해 한탕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시험만 합격하면...'
'자격증만 따면...'
'대회 1등만 하면...'
이것이 한번의 기회를 통해 경력과 사회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한탕주의'와 같다는 평가는 신랄하고 적나라한 통찰이었다.
동시에 커피 공부를 할 때 한국인들이 유독 대회나 자격증 시험에 관심이 높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이라 불리는 SCA(Speciallty Coffee Association) 뿐만 아니라 국내외 협회들이 만든 자격증에 한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응시한다는 것이다. 국내 바리스타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서 대회 참여가 필수라는 조언도 들었다. 물론 국가 공인 자격이나 대회는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협회, 기업의 후원을 받아 만든 자격증에 많은 한국인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 대회, 학위에 대한 관심 모두 '권위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사에 대한 깊은 탐구심과 경쟁에 대한 흥미로 인해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또한 자원의 낭비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과 돈, 체력과 셀 수 없는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막연히 자격증, 대회, 학위에 집착하는 것이 더 귀한 기회를 낭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내가 석사학위와 자격증을 찾았던 건 막연한 불안감이 원인이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주장하기 위해 남들의 인정을 받을만한 서류가 필요했다. 더 근본적인 고민, 나의 흥미와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성찰은 미뤄뒀던 것이다.
이런 성향이 나의 개성일까, 한국 사회 전반의 특징일까. 한국인은 예민하고 초조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이 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민감하고 꼼꼼해서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다. 그 장점으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행복감을 덜 느낀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인이 커리어를 대하는 태도의 원인을 짐작하자면, 경력에 대한 성취로 불안을 상쇄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업무에 대한 만족감보다 더 높은 연봉, 더 인정받는 직장, 더 안정된 환경을 기준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것이다. 더불어 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하여 얻을 수 있는 자격증, 학위, 상패 등에 집착하고 그 모든 성취를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빨리'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것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도전하기 보다 다시 노트를 펼쳤다. 내 '커리어 노트'는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경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집하는 노트다. 찬찬히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적어본다. 죽기 직전까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글쓰기일 것이다. 만년필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떠밀려서 결정하지 마라.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결정은 없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