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나는 고등학생 시절 진로고민을 할 때면 줄곧 간호사를 떠올렸다. 어릴 때 병원 생활을 하며 의료진 분들께 도움을 받았던 영향도 있었고,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꿈에도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호학과를 가기로 결정하고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지지해 줄 것이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반응은 떨떠름했다.
“간호사가 많이 힘들다던데 잘할 수 있겠니? “
“다른 일을 한 번 알아보는 건 어떠니?”
가족들의 반응이 속상했지만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작은 누나가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누나는 한 번씩 방문을 닫으며 흐느끼는 날들이 있었다. 속사정을 몰랐을 때는 누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런 날은 이틀 쉬고 출근했을 때 그동안 담당했던 환자분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은 날이었다. 환자를 잃었을 때 간호사가 느끼는 상실감은 환자와 간호사의 깊은 유대만큼 비례한다.
작은 누나의 권유로 고3 때 호스피스 병동 봉사활동을 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어깨너머로 본 간호사의 모습은 환자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세심한 돌봄을 하는 모습이었다. 환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바라보며 전인격적으로 돌봄을 실천하는 간호사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간호가 이렇게 멋지고 숭고한 일이라면 내 인생을 걸어봐도 되겠다! “
나는 당시 남고를 다니고 있었는데 대학을 지원하던 해에 간호학과를 지원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실제로 간호학과에 진학해 보니 100명 남짓한 1학년 전체에 남자 동기는 5명이었고, 모든 학년을 합쳐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남자간호사가 4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실제로 간호사를 해보니 간호사는 성별이 아니라,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최선의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나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직업이다.
진로를 선택할 당시에는 내 결정을 만류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내 적성에도 맞고 간호사로 경력이 쌓인 지금도 내 안에는 여전히 열정이 남아있기에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병원에서 역량을 펼칠 기회가 상당히 줄어든 후배님들의 처지가 눈에 밟힌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이기심을 뛰어넘어 타인의 회복을 돕고자 진로를 선택했고, 열정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훌륭한 후배님들의 앞날이 부디 밝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