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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문 Apr 16. 2023

싱글맘의 편지-1.엄마로 살게 해주는 너에게

너의 세상에 관심이 많아

 계절이 한번 바뀌면 아이들의 몸도 훌쩍 자라있다. 지난 해에 입었던 옷들은 오염이 되어 입을수 없거나 작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낳기전에는 아이가 생기면 예쁘게 입히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옷에 음식물을 잘 흘리기도 하고 손에 묻은 음식물을 옷에 쓱 닦아버리기도 해서 예쁜 옷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실용적인 옷을 입히게 된다. 한계절 실컷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만 돈을 쓰다보니 매번 같은 매장에서 세일하는 옷들을 사곤 한다.     


아들은 옷이 작든 크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이라 주면 주는 데로 입는다. 혼자 옷을 골라 입고 나온날 아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옷 모양새에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인지 알수 있다. 바지의 가운데 부분은 쓱 치켜올린 그대로 옆으로 돌아가있고 한쪽발의 바짓단은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한 기색없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어쩜 저리 무딜까 싶기도 하다. 상,하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입고 나오면 다시 골라주기도 하는데 옷 갈아입는 것이 귀찮은 아이는 아예 처음부터 내게 옷을 꺼내달라고 한다.    

 

반면 동생인 딸 아이는 내가 골라주는데로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 양말,속옷,바지,티셔츠를 넣었다 뺐다 반복하며 아침부터 실랑이 하는 게 싫다. 추운날 반바지를 찾고 바지위에 치마를 또 입겠다 해도 점점 나의 설득이 통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가부터 자연스레 옷을 혼자 꺼내입는다. 요즘은 청바지와 블랙만 주로 입는데 좋아하는 취향이 확실해서 점점 비슷한 옷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취학때는 다소 부담스러운 샤스커트나 올핑크 패션을 선호하더니 초등학교 입학 후에 바로 취향이 바뀌었다.    

 

요즘은 내옷을 넘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이즈가 맞는다기 보다는 옷이 몸에 걸쳐진 모양인데도 구지 내 티셔츠를 입고 자거나 내 점퍼를 입고 나간다. 그럴때마다 나중에 전부 다 물려주겠다고 살살 설득하기도 하는데 이미 내옷의 대부분은 미래의 자기옷이다. 옷에서만 그치지 않고 가방이며 악세사리,신발 엄마인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미래의 자기 모습이라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나도 돌이켜보면 어릴적 엄마의 몇 안되는 화장품들을 탐냈던 기억이 있다. 손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모셔둔 비밀스런 그것들을 엄마 몰래 꺼내 두고 손바닥만한 거울속에 내 얼굴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특히 고급스럽게 반짝이던 금색 뚜껑을 벗기면 유혹하듯 담겨있는 붉은 빛 립스틱은 최고였다. 입술이 붉어질수록 얼굴은 더욱 선명하고 어른이 된거 같은 착각을 주었다. 갑자기 예쁜 사람이 된 느낌으로 입술을 내밀어 보기도 하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맞닿게 하며 소리가 나도록 골고루 퍼지게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에게 들키면 싫은 소리를 들었고 그것들은 점점 더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런 나의 모습을 똑 닮은 딸아이가 나의 화장품을 기웃거리면 몰래 발라보면 재밌다고 같이 키득거리기도 한다. 자기 마음을 기분좋게 들킨 아이는 배시시 웃어 버린다. 볼에 붉은 빛이 나는 것을 조금 발라주면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온갖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한다. 관심이 생긴 것을 못하게 하기 보다 잘 사용할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당장 화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장을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을 잘 가꾸는 방법을 일러주고 싶다. 자연스레 생기는 관심들을 같이 얘기 나눌수 있고 모습 그대로를 수용 받는 경험을 주고 싶다. 해서 안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잘 사용할수 있는 지혜를 함께 고민하는 엄마가 되고프다.     


중학생 시절 유행하던 나팔바지 스타일이 너무 입고 싶었는데 사주질 않으셨다. 내가 입는 옷들은 대부분 네 살 많은 언니가 입던 옷들이었다. 심지어 속옷 마저도 물려입어야 했다. 소풍 가는 날 너무나 그 바지가 입고 싶었다. 밤새 바지 하나를 붙잡고 손바느질로 수선을 해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완성했다. 뿌듯한 마음이었고 뭐든지 만들어 입을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어쨌든 내 힘으로 만들어 낸 그 바지를 입는 상상을 하며 즐겁게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바지는 갈기갈기 잘라져 있었다. 숨겨둔 바지를 찾아낸 언니가 중학생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까불지 말라고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때라 패션디자이너를 꿈꿀수도 있었을텐데 바지와 함께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딸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생기면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된다. 내 점퍼를 자꾸 입겠다고 해서 비슷한 옷을 직접 고르게 했다. 배송이 온 날 옷을 본 아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이 되었다. 검정색 크롭 후드점퍼였다. 정말 원하는 것을 가졌을때의 표정은 엄마의 지갑을 열게 한다. 점퍼와 어울릴 양말도 주문해 주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블랙,화이트,그레이 세가지 컬러의 양말 세 켤레에도 아이는 행복해 했다. 긴양말이 생기니 갑자기 반바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년에 입었던 바지는 너무 타이트했다. 보기에도 꽉 끼는 반바지에 양말을 신고 후드점퍼를 입으니 아마 자기가 상상했던 모습이었는지 춤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아이 옷을 파는 매장이 없다. 한시간이 걸려도 제주시 동문지하상가에 반바지를 사러 가기로 했다. 모처럼 각종 매장이 즐비한 지하상가로 들어서니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나를 이끌었다. 청반바지와 발목까지 올라오는 검정부츠와 검정색 점퍼,흰색크롭티셔츠를 골랐다. 사서 바로 입고 가는 것을 보니 정말 내딸이 맞구나 싶었다. 양말도 한쪽은 검정색 한쪽은 흰색으로 신고 나왔다. 완벽하게 원했던 코디를 완성한 아이의 발걸음이 통통 튀었다. 덕분에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내마음은 가득 차올랐다. 혼자 여러 가지 역할을 하다보니 가끔 숨이 턱하고 막힐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몰려올때가 있다. 내가 엄마로 아이들을 끝까지 잘 케어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수 있겠다. 좋은 것만 줄수는 없겠지만 좋은 관계로 지낼수는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늘 아이들을 대하려 한다.     


예정되지 않았던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 아이는 기쁨을 난 자신감을 다시 장착해본다. 우리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더 생겼고 추억도 함께 생겼다. 지하상가 한번 데려왔는데 엄마 최고가 절로 나왔다. 돈은 옷값으로 쓰였지만 내가 낸 것은 아이가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펼쳐나갈 꿈의 씨앗에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항상 네가 꿈꾸는 세상에 관심이 많아 그러니 언제든 기꺼이 함께 할거야 그리고 나를 너의 엄마로 살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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