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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nd 쑥 Nov 14. 2017

럭셔리 버스

#첫 로컬버스 #안내원 #한글 안내문구 #알럽 버스     


사이공강 야경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 숙소까지 도보로 40분 거리. 낮이었으면 걸어갈까 고민하겠지만, 이미 하루 총 도보량을 채운 우리는  지친 상태였다. 혹시 버스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글맵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가까운 곳에 우리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좋아, 이번 기회에 베트남 로컬버스를 타보자!


정류장에 도착하니 01번 버스가 서 있다. 차 안에는 기사 아저씨와 또 한 명의 남정네가 있었는데, 그의 정체는 버스에 승차하니 곧바로 밝혀졌다. 우리가 좌석에 자리 잡으니 그가 다가오더니 요금을 내라고 한다. 80년대 우리나라처럼 버스 안내원이 베트남 버스에는 아직 있었다.       


버스 출발 후 안을 둘러보니 익숙한 문구가 보인다. 우리의 첫 베트남 로컬버스는 한국 H사의 것이다. 타국에서 한국의 버스를 타보다니 묘한 느낌이다. 버스는 우리가 낮에 걸었던 길을 따라가더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다리도 편한 버스, 우린 앞으로 무조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당장 다음날부터 무려 6번의 버스를 탔는데, 버스 종류도 에어컨이 빠한 새 버스부터 낡은 버스까지 다양했다. 버스 요금은 가장 좋은 109번 버스(버스터미널에서 푸년군에 위치한 쑥 선배네 회사 이동 시 탑승)가 1인당 20,000동(한화 1,000원)이고, 가장 저렴한 버스는 5,000동(한화 250원)으로 편차가 컸는데, 부과 기준은 잘 모르겠다. 그냥 안내원이 부르는 대로 냈을 뿐    

 

이처럼 베트남 버스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버스 안에서 막강한 권력(?)을 뽐내는 ‘버스요금 징수원’이 기사와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베트남의 월 최저임금이 17 만원, 월평균임금이 24 만원이니 버스요금 징수원 월급은 20 만원쯤 될까? 모든 버스마다 직원이 있는데 버스카드 단말기를 설치하는 것보다 저렴한 걸까? 계산기를 두드리니 ‘이거 사업 시장이구나’ 싶어 졌다. 그러나 당연히 그만큼의 일자리는 없어지겠지... 어쨌든 사랑해요, 로컬버스!


숙소 근처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
우리가 타고 다닌 버스티켓 모음


#우리가 탄 버스

02번 : 버스(푸미흥<->벤탄)

109번: 버스터미널 -> 쑥 선배네 회사

04번 : 쑥 선배네 회사 ->푸미흥행 버스 갈아타는 정류장

72번 : 갈아타고 푸미흥행

02번 : 푸미흥 ->호찌민시 외곽

02번 : 호찌민시 외곽 -> 벤탄 마켓


#도시구조와 교통수단의 상관관계

#주차는 어디에 하나요?      


우리는 열심히 로컬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사실 호찌민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과거 TV에서 베트남을 소개할 때면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를 입은 대규모 자전거 부대들이 활보하는 장면이 화면에 꼭 잡혔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옛 모습이 되었다. 소득 수준이 오른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샀고, 이젠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다. 자동차도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까지는 고소득자의 전유물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동차 소유자도 늘어나겠지만 베트남 도시구조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베트남의 전통주택은 세장형의 좁은 필지에 튜브 하우스(tube house)로 지어졌다. 이 주택들은 2~4m 정도의 전면폭과 20~60m 길이의 좁고 긴 형태로, 협소한 필지당 전면폭은 자동차의 주차공간 확보를 어렵게 한다. 골목 역시 좁아 주차공간도 없다.  비단 주택뿐만 아니라 나짱에서 묵은 호텔도 1층은 오토바이 주차장을 따로 마련해놨고, 공항버스터미널도 내부에 오토바이를 대고 버스를 탈 수 있게 오토바이 주차장화 되어있었다. 신도시 건설과 같이 대규모 택지개발이 아닌 이상 기존 도로와 주택을 다 부수고 다시 지을 순 없고, 기존에 있는 도시구조 안에서 교통시스템을 잘 갖추는 게 쉽지는 않다.      


호찌민은 사람은 많고 도로는 적고, 많은 사람을 태울 대중교통은 부족하다. 베트남 정부에서 대중교통을 확충하려고 일본 정부와 합작으로 호찌민 도시철도 1호선을 건설 중이지만, 자금난으로 내년 개통이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있다. 반면 오토바이만 있으면 우리 집 1층에서 목적지 바로 앞까지 도어 투 도어(door-to-door)로 갈 수 있는데 사람들이 굳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려고 할까? 아빠가 운전하고 아이는 앞에, 엄마는 뒤에, 가끔 애완동물까지 태워서 호찌민 거리를 활보하는 오토바이를 본다면 대중교통 이용 유도가 실효성이 있을까 싶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버스전용차로처럼 중심가에서도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차선 분리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리라. 더 나아가 매일 한 시간씩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아니면 오토바이 매연으로 서울의 미세먼지 지수를 위협할 수준의 호찌민 대기상태를 고려했을 때는 친환경 오토바이가 빨리 보급되도록 정부의 유도 정책-가령 보조금 등-이 필요하다고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다.


중심가의 오토바이 부대
붙어있는 튜브하우스들
튜브하우스 안 쪽 좁은 골목-자동차 주차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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