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의 글쓰기>를 읽고
서사문(敍事文) 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글쓰기란 삶을 쓰는 것, 삶을 키워 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 <이오덕의 글쓰기> p.122 -
“몸에 기생충이 있는지 검사를 해 봐야겠어.”
둘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잠들기 직전이 되면 등이 가렵다며 손바닥으로 문질러 달라했다. 몸을 만져주는 느낌이 시원해서 잠들기 좋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둘째가 머리를 자주 긁은 것 같다. 긁적이는게 아니라 양손으로 벅벅 긁기도 했다. 날씨도 더워지고 땀이 많은 체질에 머리숱까지 풍성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머리가 가렵지 않은가!
금요일 저녁, 파스타 면이 삶아지는 동안 둘째를 불러 앞에 세우고 괜스레 머리카락을 뒤적였다. 손가락으로 가르마를 타자마자 머리카락에 하얗게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가끔 머리밑에 먼지 같은 게 묻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예사로 보며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머리 전체에 계속 비슷한 이물질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의심하기 시작했다. 불현듯 초등학교에 머릿니가 유행이라는 뉴스를 보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릿니 주의하라는 학교 통신문도.
하얀 알갱이를 떼어서 확인해야하는데 선듯 손이 가지 않았다. 서랍을 열어 비닐장갑을 찾았다. 머릿니를 본 적이 없으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힘들었다. 핸드폰 속에 다양한 이미지와 비교하는 수밖에. 나머지 두 아이도 다급하게 불러 머릿속을 살펴보았다. 비슷한 상황… 애타는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호들갑스레 전화를 했다. 엄마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파스타는 푹 퍼져버렸고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배고프다는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관련 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니 내 머리밑이 무척 가려워지기 시작했고 밥맛은 툭 떨어졌다. 약국에 가서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서캐(머릿니의 알)는 하나씩 손으로 제거해야한다고 했다. 침구는 당연히 소독을 다 해야하고.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나니 9시, 집 근처 약국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다. 우선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다시 머리를 살펴보았다.
“아악~~~~”
아이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물체가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 머리를 밀쳐냈다. 휴지를 둘둘 말아 다시 아이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겨우 잡았다. 또 움직인다. 옆에 화장지를 잡고 들고 아이 머리를 세차게 눌렀다. 소용없는 짓! 벌레를 봤으니 그냥 잘 수 없다. 그 샴푸를 사서 온 식구가 머리를 감아야 했다. 늦게까지 문을 연 약국을 찾아 미팅 중인 남편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남편은 집에 오는 중이었다. 여차하면 병원에 가 볼 생각에 잠옷을 입은 아이 셋을 데리고 남편 차에 올라서 약국으로 향했다. 문 닫을 시간이 지난 약국에 약사는 불을 다 끄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남편이 전화로 5분만 양해를 구한 것이다. 나이 지긋한 약사는 샴푸를 건네주며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바쁘게 오느라 숨이 차서 헉헉하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약사에게 물었다. 약사는 샴푸가 든 봉지와 신용카드를 건네며 차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머릿니 별거 아니에요. 샴푸 쓰고 관리하면 금방 나아. 엄마가 괜히 놀라서 야단스러우면 아이가 주눅 들어!!”
약사와 문을 닫으며 약국을 나와서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느려졌다.
“병원 안 갈 거야. 그냥 집으로 가자.”
차에 올라 털썩 자리에 앉아서 검은색 봉지를 꼭 안고 숨을 고른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그제야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계속 아이 뒤통수만 보느라 걱정이 가득한 아이의 눈을 살피지 못했다. 그동안 머리가 가렵고 아파서 고생했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아뿔싸…
집에 도착해서 사용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둘째, 막내, 첫째 순으로 머리에 액을 바르고 10분을 기다렸다가 씻었다. 머리 상태가 안 좋은 순이다. 머리를 말리고 2차 작업으로 젤을 머리에 잔뜩 바르고 촘촘한 빗으로 한 올씩 빗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러운 비닐장갑을 벗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아이의 체온을 손으로 느끼니 마음이 편해졌다. 12시가 넘어가니 아이들은 졸리고 힘들다며 징징대고 나는 손아귀가 저리기 시작했다. 이 짓을 일주일이 넘게 반복해야 한다니 긴 한숨이 나면서도 빗질을 하는 만큼 내 머리밑도 시원해졌다.
“둘째야, 엄마가 소리 질러서 많이 당황했지? 엄마도 처음 겪는 일이라 놀라고 무섭기도 했어. 그런데 약국 선생님이 괜찮다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 그리고 엄마 혼났어. 별거 아닌데 엄마가 호들갑 떨면 아이가 놀란다고. 그동안 머리 가렵고 아파서 힘들었지? 엄마가 더 빨리 확인했어야 하는데 미안. 참, 약사 선생님이 친구들이랑 장난칠 때 머리를 문지르지 말라고 하더라.”
아이들이 잠들고 조용해진 늦은 밤, 이불 살균을 위해 돌아가는 건조기 소리가 내 마음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