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웃는 장례식>을 읽고
네 번의 장례식을 했다.
돌이 지난 첫째를 두고 출근하던 바쁜 아침이었다. 엄마가 전화로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엄마를 볼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괜찮냐만 여러 번 물었다. 할아버지는 십여 년을 치매를 앓았고,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지냈다.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겨우 목숨만 유지하는 상태가 되자 요양원에 가는 발길도 뜸 해졌다. 입관식에서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났다. 상을 치르는 내내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버지를 여읜 엄마와 남편을 잃은 외할머니의 마음만 걱정되었다. 상을 치르고 가족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외삼촌이 할아버지의 마음이라며 작은 봉투를 건넸다. 봉투에는 ‘예쁜 손녀 선경이에게’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와 용돈이 들어있었다. 오래전에 마음에서 멀어진 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와서 그제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며 할아버지가 전한 편지를 발견했다. 나를 업고 안고 키워 준 할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졌다. 육체와 기억은 사라지지만 숨결과 사랑은 영원한가 보다.
두 번째는 할머니의 죽음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손님 같은 마음으로 다녀왔다. 할머니는 꽤 정정한 편이었는데, 넘어지면서 다친 후 거동이 힘들어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많이 울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봐서 할머니에게 적대감이 컸다. 친정에 가면 마지못해 잠시 근처 할머니 집에 들러 인사하는 시늉만 했다. 뚱한 표정으로 나를 할머니는 늘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도 무뚝뚝한 마음으로 사진 속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없던 사람처럼 내 기억과 삶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을까! 아직도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아픔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아픔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이제는 인사하러 갈 짐을 벗었음에도 어깨가 무겁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장례식에서는 상복을 입었다. 오랫동안 각 종 지병을 앓던 시어머니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결혼 후,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졌는데, 제때 상처를 돌보지 않아서 곪아 터졌고 흉이 남은 상태였다. 돌쟁이 막내와 어린 두 아이를 앞세워 장례식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었다. 죽음 앞에 상주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이 신경 쓰일 정도로 담담했다. 어머니를 잃은 남편의 마음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상복을 입었지만 표정이 없는 인형처럼 서 있었다. 장례식 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종종 마음에 남은 상처가 아린다. 생전에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아쉬움보다 상처를 안아주지 않고 떠난 것이 섭섭하게 느껴진다. 육체가 사라진다고 인연이 단번에 끝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세 번째에 연이어 네 번째 죽음이 찾아왔다. 남편이 해외 출장을 떠난 사이 요양원에서 시아버지의 죽음을 전해왔다. 나 대신 아무도 찾아갈 사람이 없어서 친정엄마에게 세 아이를 부탁하고 요양원에 가서 시신을 확인했다. 슬프기보다 무섭고 두려웠다. 남편에게 연락하고 상조에 전화했다. 병원 안치실에서 다시 시신을 확인하고 장례 준비를 대충 끝난 뒤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한국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너무 놀라고 기진맥진해서일까? 그 많던 눈물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눈물이 흐르지 않았고 무덤덤하게 장례식을 마쳤다.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기도 전에 부모가 남긴 재산을 두고 다툼이 일어났고, 어느 날 법원에서 소장이 도착했다. 남편은 허탈감에 깊은숨을 내쉬었고, 나는 괘씸해서 씩씩거렸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맞는 세 번째 여름, 소송과 관련된 문제도 일단락되었으니 이제는 평온하고 잔잔하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죽음은 상상조차 힘겹지만 나에게 찾아온 네 번의 장례식은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담담했다. 한순간에 뽕하고 사람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 사람과 관계는 끊어지지만, 함께 했던 인연은 결코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 삶의 곳곳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짧은 편지 속에, 엄마와 나의 상처 안에, 다른 가족들 품에.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숨결은 바람을 타고 세상을 누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펼쳐지는 잔치를 즐겨야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엄마, 죽는 순간에 뭐가 보여?”
저녁을 먹다 말고 여섯 살 막내가 묻는다. 어렴풋이 죽음을 알게 되는 나이다 보니 종종 가슴을 철렁하는 질문을 한다. 죽음이란 단어의 무게에 놀라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답을 얼버무렸다. 부산하게 저녁을 먹고 정리한 뒤, 지친 몸을 끌고 아이를 재웠다. 세 아이가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를 바라보다 문뜩 아이의 물음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내 삶이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아이의 삶에 '엄마'의 부재에 마음이 쓰리다. 죽음의 다른 면이 생을 더욱 간절하게 한다.
“엄마는 우리 가족을 봤으면 좋겠어. 너희에게 엄마라서 제일 행복했다고 말해주고, 부모님께 딸로 지내며 너무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어.”
장례식장에서 흐르지 않던 눈물이 갑자기 흐른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