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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Jul 27. 2024

잘못 놓인 벽돌 두 장

엄마의 기도


첫째의 13번째 생일이다. 내가 처음 '엄마'라 불리게 된 날이기도 하다. 너무 작고 약해서 품에 안기도 조심스러웠던 아이는 어느 새 엄마 키를 훌쩍 넘게 커버렸다. 언젠가부터 아이를 우러러보게 되었고 아이 옆에 서 있는 내가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서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에 늘 만족하고 감사하는데, 올여름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평소보다 무겁고 꿉꿉하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일까? 무거운 마음을 품고 아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좋아하는 빵을 구웠다.


매일 수많은 선택지 앞에 결정을 한다.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을지처럼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소한 결정도 있다. 어디로 휴가를 갈지, 어떤 차를 살지처럼 정보를 찾아보고 비교하며 결정하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어떤 일을 할지처럼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부분도 있다. 크고 작은 선택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나'가 되었다. 선택의 결과에 따라 켜켜이 쌓인 선택의 벽돌에는 만족이나 후회를 담고 있다. 아이의 생일을 앞두고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든 것은 후회를 담은 벽돌 몇 장이었다.


후회는 이전에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후회는 진정 원하지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이라 ‘욕구’가 담겨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의 선택을 통해 다른 미래를 그려갈 수 있다. 후회는 마주하기 불쾌한 감정이지만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잘못이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덮어버리기에는 무게감이 너무 컸다. 밀가루 반죽을 여러 번 치대며 외면하던 마음을 애써 바라보았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나를 괴롭히는 마음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후회에 더해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감정이다. 내 선택이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든다. 어릴 적에는 먹고 자는 소소한 일상이 대부분이었고 내 의지로 당장 바꿀 수 있어서 자책의 강도가 크지 않았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적어졌고, 사춘기 아이에게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졌다. 학업과 입시라는 큰 문제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고 부모 품을 떠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급함이 찾아왔다. 초조한 마음으로 불안감이 커졌다. 특히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니 눈부시게 빛나던 아이가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고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앞을 내다보고 깊이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 때문에 아이가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를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잠시 책을 펼쳤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다가 선물 같은 구절을 만났다. (이런 깜짝 선물을 주는 책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두 장의 잘못 놓은 벽돌을 갖고 있다. 그러가 우리 각자 안에는 그 잘못된 벽돌보다 완벽하게 쌓아 올린 벽돌들이 훨씬 많다. 일단 이것을 아는 순간,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된다. 그때 우리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당신이 자기 자신 안에서, 상대방 안에서, 혹은 삶 전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어쩌면 당신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 주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당신이 오로지 그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많은 벽돌 중에 잘못 쌓은 벽돌 두 장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잘못 놓은 벽돌 두 개가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 놓인 벽돌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계속 쌓아간다면 벽은 무너지거나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없다. 잘못 놓은 벽돌에만 초점을 맞추고 벽돌 쌓기를 그만둔다면 미완성으로 남는다. 잘못 둔 것을 알고 다시 벽돌을 차근차근 쌓아간다면 튼튼한 벽을 쌓을 수 있다. 잘못 놓은 벽돌은 특별한 무늬가 될 수도 있다. 초점을 잘못 놓인 벽돌 두 개가 아니라 벽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몇 장 쌓지도 않은 벽돌더미를 보며 벽이 무너질 것처럼 한숨을 쉬고 있었다. 무수한 선택의 결과가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데 단 한 가지 선택으로 아이의 삶을 속단했다.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사과만으로 불편함을 달래기에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저 과거의 잘못으로 덮기에는 간절히 원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후회가 귓가에서 속삭인다.


지금이라도 시도하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가라고,

지금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맛있게 구운 파이에 초를 꽂아 생일 파티를 했다. 밝게 빛나는 촛불 뒤에 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가 품고 있는 넘치는 가능성과 충분한 힘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도 어렴풋이 보였다. 일단 함께 걸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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