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열 Sep 18. 2023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일까?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일까? 


난 직업상 부모의 내면을 깊게 자주 만나고, 부모를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책도 쓰지만, 부모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된 건 나도 부모라는 점이다. 부모가 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을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아간다. 어떤 것들은 부모가 되고 나서 바로 아는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부모가 되고 한참이 지난 뒤에 아는 것도 있다. 물론, 부모가 되어서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도 있다. 아니 그 부분이 가장 많을 것 같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깨달은 것 중에서도 꽤 나중의 것은, 부모는 자기도 모르게 자식을 엄청나게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통용되는 게 하나의 증거다. 언뜻 보면, 바람직한 양육에 도움되는 말처럼 들린다. 아이에게 쉬운 말보다는 어렵더라도 행동으로 직접 본을 보여주라는 것이니까. 과연 아이에게 본을 보여주면, 아이에게 긍정적일까?


이 부분은 내가 부모가 되기 전부터도 직업적으로 깨달았다.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모가 안좋은 행동을 하면 당연히 부정적이겠지만, 부모가 좋은 행동을 해도 부정적일 수가 있다는 것을 많이들 모른다. 예를 들어, 흔히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람이 부모가 되었다 치자.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을 가졌고, 인성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도 좋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소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부모가 되었다 치자. 그 사람의 자식은 어떨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부모처럼 될까?


우선, 부모처럼 되어도 문제다. 부모처럼 되었는지 아닌지를 겉모습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기 때문이다. 거울이라는 의미 자체가 겉모습이니 당연하다. 부모와 같은 직업을 가지게 되고 부모가 가진 여러 모습을 보이더라도 내면까지 부모와 같진 않다. 속은 다른데 겉은 같아야 하는 갭을 느끼며 사는 경우는 문제가 크다. 반대로, 그 갭을 못느끼고 부모 아바타로 살아도 문제가 크다.


물론, 부모처럼 안되어도 문제다. 부모와 나는 다른 존재이고 부모와 내가 다르다는 것이 스스로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 되는데, 우리 사회에선 부모가 소위 ‘훌륭할수록’ 그게 안된다. 자기 스스로가 위축되고,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 두마디가 더 위축되게 한다. 부모가 나와 다른 자식을 존중해주면 참 좋은데, 소위 ‘훌륭한’ 부모일수록 그게 어렵다.


부모와 자식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다. 하지만, 한국은 오랫동안 그래왔고 가만히 있으면 부모는 저절로 그렇게 된다. 자식에게서 나의 긍정적인 면을 더 크게 느낄 땐 나도 모르게 동일시를 강화시킨다. 비록 자식이 나와 외모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더라도, 자식은 나와 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 전혀 다른 가정 환경, 사회적 시대적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그래서 점점 나와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자식을 과하게 동일시하던 부모에게 그게 그냥 반갑게 받아들여질까?


심리적 갈등이 아주 커지기 때문에 자아를 지키는 방어기제로, 투사적 동일시를 하게 된다. 내가 받아들이기 싫은 나의 면을 말그대로 자식에게 투사한다. 그림자 투사라고도 한다. 자식이 나와 다른 점들을 발견할수록, 그게 자식의 문제라는 식으로 인식된다. 부부관계가 나쁘면 당연히 배우자에게 투사한다. 당신 닮아서, 또는 당신이 그렇게 키워서라며. 투사적 동일시를 수없이 당한 자식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부모가 자기의 소심한 면을 평생 부정적으로 여기며 그림자 영역에 묻어두었다 치자. 그럭저럭 살았더라도 자식을 키우면서 소심함이란 그림자가 의식 위로 올라오고 끊임없이 자극한다. 자식이 약간의 소심함만 보여도 매우 크게 보이고 감정이 불쾌해진다. 대놓고 비난하지 않더라도 '넌 왜이리 소심하니. 소심함을 고쳐야 해'라는 메세지를 끊임없이 준다. 물론 사사건건 대놓고 비난하게 되기는 훨씬 쉽다. 그림자 투사의 대상을 비난해야 부모는 나 자신에겐 그런 면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자식이라서 비극이다.


투사는 일방이지만, 투사적 동일시는 쌍방이다. 부모는 자식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무의식적 압력을 행사하고 그게 먹힌다. 소위 가스라이팅이다. 자식은 '아 난 참 소심하구나. 그건 참 이상한 사람인 거구나' 라고 스스로를 여기며 더욱 더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더 소심해진다. 자식은 부모의 투사 내용과 같은 생각, 감정을 경험하고 당연히 행동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그 모습을 보고 역시 소심한 애라고 낙인찍고 더 비난하고 무시하게 된다. 결국 자식은 부모가 싫어하는 성격, 가치관, 행동 등이 오히려 강해지는 것이다.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일까? 그렇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작가의 이전글 닥터 차정숙 심리분석 (3) - 최종회의 찝찝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