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7, 2017
시간의 경과를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공간이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그런 순간 중 하나다. 도피오 커피 팩토리를 알게 된 건 다이센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늘 지나는 출근길에 어느 날 못 보던 간판이 생겨났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간판이었다. 간판에는 'Doppio Coffee Factory'라는 문구가 단정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간판이 달린 건물의 창문 너머로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내부가 보였다.
카페는 벚꽃이 만개할 무렵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시작'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공간에 일방적인 친밀감을 느낀 건, 나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카페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과 공간일수록 관계를 맺는 데 신중해지는 성향 탓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오히려 대범해지는 건, 평상시의 이런 성향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봄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주말이었다.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기운 때문이었을까. 불현듯 도피오 커피 팩토리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될 것 같은 날이었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무엇이든 해도 좋을 것 같은 날.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단숨에 카페까지 달렸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선한 인상의 두 주인에게 어색한 첫인사를 건네고, 창가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 데는 망설여온 날들이 무색할 만큼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다.
도피오 커피 팩토리와의 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젠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도피오를 찾는 게 일상이 됐다. 어색하던 두 주인들과도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다. 좋아하는 자리와 즐겨 마시는 음료 메뉴가 생겼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무언가를 읽거나 쓰게 됐다. 무엇보다 그 공간 안에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공간에서 흘러간 시간만큼 쌓인 편안함과 익숙함을 마주할 때, 공간에 대한 애정을 깨닫는다. 나는 도피오 커피 팩토리를 좋아한다.
도피오 커피 팩토리의 작은 간판을 발견한 날, 사실은 예감했었다. 다이센에서 지내는 동안 이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걸, 결국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들어가 보기를 주저했던 마음 안에는 그런 짐작이 섞여 있었다. 만나게 될 인연과 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게 되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기울어진 마음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부기.
도피오 커피 팩토리는 중학교 동창 사이인 K와 S가 운영하고 있다. 2014년에 두 사람 모두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농담처럼 '카페나 할까' 하는 얘길 했던 게 시작이 됐다. 두 사람은 말이 나온 김에 커피머신이나 한번 사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괜찮아 보이는 중고품을 구입했다. 카페를 할 공간도 없었고, 커피는 만들 줄도 몰랐을 때였다. 거금 주고 구입한 커피머신을 그냥 두고 있자니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카페를 열기로 했다. 2015년 11월에 오마가리카미사카에초(大曲上栄町)에 있는 현재의 매장을 구하고, 이듬해인 2016년 4월까지 오픈 준비를 했다. 손님용 의자를 제외한 모든 가구와 인테리어는 두 사람이 반년 간 손수 만들고 꾸민 것이다. 두 사람은 커피머신이 아까워서 카페를 열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두 사람의 기울어져 있던 마음이 지금의 도피오 커피 팩토리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