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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Jul 08. 2022

아빠의 잔소리

다 때가 있다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집에서 잔소리는 보통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는 호통을 치고 혼을 낼지언정 말을 길게 늘어놓는 훈육(이라 쓰고 잔소리라 읽는다)은 없는 편이셨다.


그런 아빠가 어느 날은 식탁에서 우리를 향해 한 마디 하셨다.


' 다 때가 있다. 나중에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한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둬라. '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또 부모님들이 의례히 하는 잔소리의 하나쯤으로 듣고 흘렸고, 그 말을 잊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나도 어른이 되었고, 직장을 가졌고, 아이를 낳았다.

어느 날 문득, 아빠의 그 말이 떠올랐다. 


" 다 때가 있다 "





내 기억 속 아빠는 내가 5-6살이 되던 무렵까지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했다. 젊은 시절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공장을 다녔고, 엄마를 만나 결혼할 무렵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들었다. 


내가 아빠 나이가 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물론 아빠뿐 아니라 그걸 뒷바라지한 엄마의 희생과 헌신도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말이다.


이후로도 아빠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이리저리 알아보는 것 같았다. 어릴 적 들여다본 아빠 서재 위 책상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여러 프로그램 안내지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더 이상 아빠의 공부가 이어지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가장이 생업과 함께 공부를 지속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금전적으로도 아이 교육비와 나의 교육비를 저울질해야 한다면, 어느 부모가 자신의 것을 택하겠는가?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준비하던 시험 합격 소식을 알렸다. 


친구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공부를 시작했고, 하원 시킨 후 배우자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밤에는 다시 배우자가 아이들을 돌보고 친구는 공부를 하러 들어갔다. 

친구 부부는 시험을 준비하는 일 년 가량의 시간 동안 일상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놀러 가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체력을 위해 동네 뒷산을 함께 걷는 동안에도 문제 풀이를 했고 암기한 내용을 요약 복습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 시간조차 아껴서 공부해 꼭 합격하는 것만이 가족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친구는 어려운 시험에 단번에 합격했다. 거의 최단기간 준비생일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해낸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마음 깊이 존경스러웠다.




"다 때가 있다."


아빠의 그 말이 서른 중반을 넘긴 요즘, 스무 해가 훌쩍 지나서야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사실 나도 공부라면 참 지겹게 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에도 다시 전공을 바꾸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전문의 자격을 위해서 시험을 쳤으니 말이다. 항상 시험이 주는 중압감이 버거워 '제발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었으면 좋겠다' 되뇌었지만 공부에 끝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전력을 쏟을 수 없다.

이제는 내가 아닌 아이와 가족과 시간도, 금전적 재원도 모두 나누어 써야 한다.

여유롭게 공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친구처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눈뜨고 잠들 때까지 공부만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하원 시키고 돌보면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나도 전문의 자격시험 준비를 위해 아이를 맡기고 나왔을 때,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오전 9-10시는 되어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 아이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해서 나의 마음은 항상 쫓기듯이 바빴다. 


이렇게 시간과 자원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머리와 체력의 한계도 빨리 온다.  

나이가 들수록 이해 속도는 조금씩 느려지고 집중력은 짧아진다. 


그렇다.

아빠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나는 지금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무엇이라도 배워보려고 애쓰다가 가끔 힘이 들 때면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나며 부럽기까지 하다. 빨래, 청소, 생업, 식사 준비 등 생존을 위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고 내 한 몸만 돌보면 됐고 친구 문제와 성적 고민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어쩌면 적당한 때가 지난 지금의 시기에, 의미 있는 배움을 위한 노력은 참 버겁다.

그때보다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의 열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혼자서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나의 배움의 부족함을 느낀다. 기회만 되면 더 배워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다 때가 있다.


그때가 가장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령 그때가 지나더라도, 스스로 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비록 오래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말이다.

배움은 평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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