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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시Chalsea Oct 13. 2023

연세대 자퇴생.
폐교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런 오답

울산과 경주, 그 중간.

문 닫은 지 50년이 넘은 폐교에서 4년째 살고 있다.





학교는 1층 건물.


벽은 20cm 콘크리트 두께,

겨울에는 칼바람이 그냥 들어오는 창문은 1겹짜리 샷시.




화장실은 쪼그려서 싸는 수세식.

하지만 건물 내부와 외부 - 화장실이 두 곳이나 있다.


다만,

건물 내부 화장실은 한 칸에서 물을 내리면, 

수압이 약해져 다음 칸에는 물이 졸졸 흘러 소변도 흘려보낼 수 없다.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물을 내려야 한다.


건물 외부 화장실은,

싸고 나면 톱밥과 왕겨를 한 스쿱 떠서 뿌리는 곳.

옛날 아이들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특히 덩치가 큰 남자들은 매우 비좁다고 한다.





복도는 긴 나무 복도.

걸으면 삐그덕 거리기 때문에 5년 된 노하우로

'잘' 걸어야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갈 수 있다.




운동장은 2022년 태풍 '힌남노'로 흙모레가 쌓였다.

바람이 불면 모레바람에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이국적인 느낌의 운동장.



하지만

200년(?)도 더 된 무성한 팽나무 아래의 시원한 그늘,

그리고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벚꽃의 벚나무,

가을을 노랗게 물드리는 은행나무.



밤마다 운동장 위에 뜨는 달과 별.



이런 폐교에서의 운치는, 위 모든 불편함을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써 1000일 넘는 시간 동안

이 공간을 편안한 나의 집이 되었지요.



음, 나는 이렇게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폐교에서 사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폐교에서 살게 됐다. 

살다 보니 살만 하다. 



첫 해는 겨울이 너무 추웠다.

1월은 도망갈 곳 없는 추위였다.

그 한 달을 통해, 추위가 계속되면 우울해진다는 것도 경험했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되는 해.

최소한의 공간 리모델링으로 - 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에는

단열재를 넣고, 2중 샷시를 설치했다.

방문은 나무문에서 샷시문으로 교체했다.

샷시문에는 뽁뽁이를 붙였다.


물론 건물 자체의 한계는 못 넘는다.

벌서 가을이 오자 복도는 코 시릴 듯이 춥다.

그래도 지금은 세상 어디보다 편히 쉴 수 있는 나의 '집'이다.








요즘은 배추 농사가 한창이다.

올해는 6000 포기의 배추를 심었다.


무농약 인증만 받았지만, 유기농 기준에 준하는 배추밭. 3000 포기 가량.



올해 2023년은 가물었던 작년과 반대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다.

그래서 배추 뿌리부터 물러지는 무름병이

전국적으로 많다.

그래서 무름병이 오지 않도록,

우리 농장엔 미리미리 난각칼슘제를 뿌리는 예방 작업에 뼈를 갈고 있다.



지난주에 수확한 고구마와 땅콩도 예년에 비해 양이 적다.

적어진 일조량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오늘은 쌈배추를 수확했다. 

배추 겉잎 5장은 광합성을 위해 놔두고,

그 속잎을 떼어낸 것이 쌈배추이다.

그럼 다시 배추 속에 배춧잎이 자라 2-3일 후에 또 수확할 수 있다.


수확한 쌈배추(좌)와 쌈배추 수확을 마친 배추(우). 2-3일 후면 금새 자란다








이제 차차 날씨가 어두워져 밭에 나가는 시간을 늦췄다.


아침 4시에 일어나,

아침 6시에 밥을 먹는다.


아침 7시 반에 밭에 나가 일을 한다.

12시가 되면 학교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1시 반 정도 되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저녁 6시가 되면 이제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해 학교로 돌아온다.

저녁에는 컴퓨터 업무를 보거나, 책을 보통 읽는다.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단순한 삶.

매일 비슷한 사이클.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서는 1세대로 어머니와 언니와 손잡고 뉴질랜드 조기 유학을 갔다.

내가 한국어를 까먹을 때 즈음 돌아왔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때라서 만 2년이니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해지기 시작했다카더라)


나름 치열하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 (넘사벽인 전국구 전교 1등이 있었다)

최저 수능도 필요 없는 전형으로 연세대 경쟁률 높은 과에 입학했다. 

매 학기 우수생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교 3학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갔다.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고, 고졸이 됐다.

그렇게 집을 떠났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 나온 지 9년 차.

폐교에서 농사지으며 산지 4년 차.







참 재미있다.

같은 가정,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친언니(브런치 작가 '뱅디'님)와 참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뱅디 님은 빠른 속도로 성장한, 성장하는 회사의 상품 기획자로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


마치 옆에서 보면, 

스타트업에서 시작해서 이직할 때마다 커리어를 쌓는 재미도 느끼는 것 같다. 

워케이션을 발리로 가고, 일 년에 최소 2번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자취집은 미니멀리즘 취향으로 인테리어를 꾸미면서,

요가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이 시대 청년들의 꿈꾸는 삶을 산다랄까.



생각해 보면 우리 자매와 같은 가정환경은

나처럼 살기보다 언니처럼 사는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

참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각자 인생에 만족하는 것도 재미있다.



왜 우리 한 자매는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됐을까?



어떤 가정환경이었는지,

그리고 그 두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게 됐는지를,

각자 선택의 순간들과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각각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뱅디 님과 크로스 기획 연재.

https://brunch.co.kr/@hannnn/5






반전인생, '이렇게' 사는 삶도 있다.





미친 듯이 달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지금 내가 그리는 - 혹은 남이 그려주는 - 인생 말고도,

다른 길도 있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런 인생의 오답도 있다고. 




고개를 흔드는 어른들의 이해를 받기는 어렵겠지.

다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대한 응원의 손길이 될 수 있길.

어느 누구의 '반전인생'이란 작은 불씨에 나무 하나 보탤 수 있다면,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면 좋겠다.



내 청소년기에 이런 숨구멍을 틔워준 누군가가 있었기에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갚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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