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더라도 좋아하는 건 스스로 찾아내고 가져와야 한다.
세상은 그렇다. 하고 싶지 않아도 출근해야 하고, 싫은 누군가도 마주해야 한다. 하루 최소 1/3은 일을 해야 하고, 1/3 정도는 잠을 자야 한다. 동그란 케익 큼직한 두 조각은 포크를 갖다 대기도 전에 쏙 사라지고, 남은 한 조각을 어떻게든 아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참.
그러니 매일 열심히 확보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것, 그 일, 그 사람.
스무 살이 된 직후에는 휩쓸려 좋아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어느 분야에 강한지 모르고, 누군가를 골라 따라 하기 바빴다. 편했다. 편하기만 한 나날이었다. 남을 따라가면 고민할 필요도 없고, 내 책임도 아니고, 쉬우니까.
그렇지만 드문드문 찾아오는 위화감을 평생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말 갑자기 찾아온다. 호방한 선배를 따라 친구를 잔뜩 놀리다가 그 눈동자에서 일렁임을 마주칠 때 느끼는 불안함과 부끄러움. 매일 4시간 넘게 배구 동아리에서 연습을 하고도 경기에 4분 정도 있다가 교체되고 느끼는 불필요감. 글 쓰는 일이란 영 남자답지 못하다 여기고 몇 년간 글 쓰는 상상만 하다가, 기어이 공모전에 이야기도 시도 투고하고 뿌듯해하는 나를 찾고 깜짝 놀라거나. 그런 돌발적인 위화감.
결국엔 선택을 해야만 한다. 평생 이렇게 남들 따라, 무난하게, 많은 사람들이 수용할 법한 행복을 따라갈지. 남들이 갸웃거리고 알아주지 않을, 나만의 행복을 고달프게 찾아갈지.
좋아하던 배구를 열심히 연습하고도 끝내 선발로 시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 여기 까지구나. 남들이 좋아하는 그 모습에 눈이 반짝여 따라 좋아한 것에는 한계가 있구나. 놓아줄 때를 알아야겠지.
최근에 와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대로 나에게 담았다. 눈이 끌리는 꽃이 보이면 꿋꿋이 멈춰서 사진을 찍고, 시간이 나면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대중성이 낮은 영화를 골라보고, 골똘히 생각하고 또 글을 쓴다.
이렇게 시작한다. 착각하겠다고 마음먹어서, 상황에 이끌려서, 거절하지 못해서 애써 좋아한 그것, 그 일, 그 사람들을 놓아주는 연습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불편한 일이지만, 모든 걸 좋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완벽하지 않고 시간도 모자라니.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척했던 그 모든 것에 작별인사를 건네고, 내가 기어이 찾아낸 그것, 그 일, 그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