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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e Jul 31. 2023

선 의 예술, 그리고 윤이상 1부

독일의 윤이상음악 수용

붓의 획


안녕하세요 음악큐레이터 MUTE 입니다!


붓의 획은 동양예술 전체를 함축하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붓을 잡아 한 획을 그리기 시작하고 붓질 중간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 먹물이 종이에 사방팔방 튀기도 하고  큰 점을 찍기도 하고, 붓질이 점차 느슨하게 시작점으로부터 방향을 달리하면 붓 털 사이사이 스며든 먹이 여러 갈래로 선을 이루어 종이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 한 획의 형태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의 동양예술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아시아의 전통을 홍보하는 광고, 특히 한국전통을 광고하는 영상을 보면 붓글씨를 묘사하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광고의 내용을 보면 보통 커다란 붓이 등장해 아주 단순하게 한 획을 그리거나 원을 그리거나 하는 '선의 형태'를 묘사하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이 선을 그리는 장면이 한국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지요.


이 동양 전통의 선의 미학을 유럽 클래식음악으로 승화시킨 작곡가가 있는데 바로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입니다.


윤이상 Isang-Yun (1917-1995)


윤이상 작곡가는 특히 그의 작품은 한국보다 유럽 클래식음악계에서 더 유명합니다. 유럽 전통을 고수하던 유럽클래식 음악 씬에서 비유럽인, 특히 한국사람인 윤이상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유럽에서 활발히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푸치니, 드뷔시처럼 동양의 신비로운 요소를 부분적으로 차용해 본인들의 작품에 일정 부분 녹여낸 일도 있었으나 윤이상처럼 동양의 미학을 통째로 유럽음악의 언어로 바꿔 유럽에 충격을 안겨준 일은 전례 없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배경에 의해 동아시아를 뿌리로 했던 그의 음악이 유럽 음악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수용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독일의 윤이상 수용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시 현대음악계의 움직임으로 통해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동양문화에 대한 유럽 현대음악의 지대한 관심: 

올리비에 메시앙, 피에르 불레즈 등 프랑스 작곡가들을 시작으로, 존케이지, 슈톡하우젠 등이 동양문화와 동양철학에 대해 사유하며 동양정신이 깃들인 전통음악을 일정 부분 차용하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존케이지의 4분 33초는 중국 유교경전인 '주역'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간의 의도가 배제된 무작위의 상태가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내용을 주장하는 동양의 주역사상을 접한 케이지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 '우연성 음악'을 창시합니다.


존 케이지 John Cage (1912-1992)


2. 음악 이외에 주관적 요소들에 대한 관심:

서양 전통 클래식음악사의 전유물인 '조성음악'의 쇠퇴를 결과로 음악의 객관성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음악의 객관적인 요소들)이 무너지면서 음악은 '주관적 요소'에 더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음악이 유명세를 타려면 음악 너머의 것들을 반드시 함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인 작품에 녹여낸 음악 이외의 것들을 설명해야 할 새로운 획기적인 철학적 사유라든지 미학적인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의 철학과 미학을 넘어 눈을 돌려 아직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 아시아의 문화와 미학,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지극히 높아지게 된 것이지요.


동양철학의 중심사상 '음과 양'


이러한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1950년대 당시의 상황은 윤이상이 동아시아 뿌리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유럽 음악 생활의 틀 안에서 실현하려는 의도에 특히 유리한 조건이었음은 틀림없었습니다.

윤이상은 그의 음악에서 동양전통의 리듬이나 음계, 장단을 사용하거나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를 도입하는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적인 요소'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적 기원과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동양철학과 정신적 내용'에 뿌리를 둔 '동양미학'적 요소를 사용해 서양의 음악적 언어에서도 동양적인 정신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시아적이지도 유럽적이지도 않은, 하지만 유일무의 한 그만의 스타일은 가장 윤이상 적인, 독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 클래식 음악에서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죠.


윤이상의 작곡기법


윤이상 음악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만의 독자적인 작곡기법입니다.

그는 한국음악기법뿐 아니라 동양철학과 미학을 그의 작곡기법에 녹여냈는데 그의 독자적인 기법을 연구자들은 그리고 윤이상 스스로 중심음(중심음향) 기법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이 중심음 기법은 동양의 미학을 매우 잘 표현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동양예술의 '선'을 잘 표현한 윤이상의 새로운 독자적인 작곡 기법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윤이상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선적'이다라고 늘 언급했었고 이것은 단순히 조형적 의미뿐 아니라 미학적,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늘 강조했었죠.


윤이상음악이 왜 '선적' 인지에 대한 연구들은 윤이상 작곡기법 분석을 중심으로 상당 부분 있으나 상당수 윤이상음악의 조형적인 부분들, 즉 그의 음악 기술적인 부분들을 증명하려고 하는 연구들이 대부분이고 기법에 내재되어 있는 선적 미학의 '철학과 미학의 근본'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정신을 알면 좀 더 윤이상의 음악, 더 나아가 동양미학의 기본적인 정신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조형적 측면인

'동양회화'를 통해 좀 더 가시적으로 이 '선의 미학'을 조망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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