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랜딩 일지_프롤로그

8년 차, 브랜드 컨설턴트로 살아온 지난 날들

by 브랜딩하는 물고기

몇 달 전,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정 대표님과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었어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근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어요. 대표님과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이어가던 중, 대표님이 가벼운 질문을 하나 던졌어요.


"네가 올해로 몇 년 차지?"


순간 당황해서 급히 손가락을 펴고 하나씩 세기 시작했어요. 한 손을 다 쓰고도 모자라 반대편 손가락을 하나둘 접고 나서야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무려 여덟, 8년 차였어요. 내가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한 지 벌써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다니. 저도, 대표님도 놀라며 웃어넘겼어요.


그렇게 새삼 나의 년 차를 알게 되고 문득 생각했어요. 나는 이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브랜드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말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지난 과거의 시간들을 하나씩 스쳐 지나가게 만들었어요.




공부가 너무 싫어서 미대에 가겠다며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미술학원이 사실은 디자인 입시 학원이었어요. 거기서 친구 따라, 강사 따라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디자인 입시 준비생이 되어 있었어요. 그때는 디자인이 뭔지도 몰랐어요. 학교 끝나고 4시간 동안 성실하게 미술 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그냥 열심히 사는 것 같았어요. 욕심도 없었고, 간절하지도 않은 고등학교 생활은 당연히 좋은 입시 결과를 바라기 어려웠어요. 어찌어찌, 꾸역꾸역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대학 입시를 치렀고,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죠.


웃기게도 대학에 가서 난생처음 공부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어요. 아득바득 나름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이른 봄, 아직 졸업은 두 학기나 남았지만 동급생 중 누구보다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어요. 나름 이름 있는 중견기업에 취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알게 모르게 지방대 타이틀에 열등감을 가졌던 터라, 이제는 앞날 창창한 밝은 미래가 있을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어요.


매일 야근과 철야가 이어졌고, 정신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 그때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했어요. 직장인이 되어서야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하지 않던 진로 고민을 직장인이 되어서야 시작한 거니까요. 그만큼 많은 부분에서 미숙했어요. 그때서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자 생각했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유독 좋아했던 게 바로 '기획'이었거든요. 나름대로 분석하고 방향성을 잡아 디자인을 기획하는 그 과정. 단순하게 그런 것만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기획만 하는 일이 있을까?' 싶었어요. 디자인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지 않고 기획만 하는 직업은 당시 저로서는 당장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플럭스엑스(Plus X)'라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때부터 브랜딩 관련 기사들을 하나 둘 찾아 읽기 시작했고, 결국 첫 직장에서 만 2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알차게 모아둔 적금을 들고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정이 오늘의 나를 만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운이 좋게 지금의 회사와 정 대표님이라는 멘토를 만나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마주하게 됐어요. 돌이켜봐도 내가 브랜드 컨설턴트가 된 건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이름부터 너무 멋있었어요. 서류 가방 들고 세련된 정장 입은 채 대기업 회의실을 누비는 나 자신을 보면서 우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설픈 능력과 생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실수를 하기도 했고, 다음날 이불킥할 만큼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운 사고도 많이 쳤어요.


지난 8년의 시간이 언제나 열정적이진 못했어요. 지치고 힘들어 마음이 떠난 적도 있었고, 출근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던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킨 건 결국 '이 일'이었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도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알지 못했어요. 그냥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길을 선택했는데,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어느덧 '책임 컨설턴트'라는 묵직한 직함으로 돌아왔어요. 아직도 이 직업 앞에서 어리숙하게 머뭇거리지만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화려한 브랜드를 만들었다거나 이론을 쉽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현장에서 직접 겪은 고민, 시행착오, 진짜 현실 속에서 부딪히며 얻은 경험들만큼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소박하고 생생한 경험들이 누군가에게는 색다른 자극과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언젠가 정 대표님께서 너만의 아카이빙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별것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구나 겪는 흔한 고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8년간의 브랜딩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영감이자 흥미로운 여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해볼게요.

화, 목 연재